그 별똥별이 내게 길을 물었다
그 별똥별이 내게 길을 물었다
  • 승인 2019.07.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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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앞서가던 승용차 한 대가 길가로 굴러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교실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문우의 차였다. ‘무슨 일이지’하며 고개를 돌리던 순간 바로 그때 또다시 덜컹, 왼쪽 바퀴가 들썩인다. 로드킬을 당한 듯, 백미러 속에는 고라니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 피해 보려 했지만 굴곡진 이 차선 도로의 내리막길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운 후 119로 전화를 걸어 신고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감나무를 지나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밥 달라고 보채고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아이였다. 가방을 내동댕이치고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 비닐장갑, 그리고 김수복 시인의『구름』전문을 적은 흰 종이와 신문지를 들고 나왔다.

“저 구름은, 그리운 물푸레나무/ 머리 위에 앉았다가도 다시 햇살이 되어/ 해바라기 눈 속에 들어가/ 해바라기가 되었다가 다시 해일이 되어/ 먼 섬 하나 들어 올렸다가도/ 그리운 사람 마음속 무지개 되었다가,/ 몸속과 몸 밖을 드나들며/ 한 세월 살다가 흘러가는 사람”

열흘 새, 낯선 주검이 찾아든 건 벌써 세 번째였다.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웠다. 시의 숨결이 닿아 마침내 좋은 곳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며 신문지를 바닥에 놓았다. 파리가 들끓어 형체가 허물어지기 전에 시를 필사한 흰 종이를 깔고 그의 주검을 수습해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서럽게 우는 것은 다만 죽음이 슬퍼서라기보다는 제 설움에 운다던 말이 떠오른다. 젖을 물려도 반응이 없는 새끼를 보며 가슴 아플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며 작은 주검을 수습하는 동안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빠져나온 땀이 얼굴 가득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더군다나 온종일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한 달 반 전, 내 허락도 없이 내가 사는 집 마당 한 귀퉁이에 자리를 틀더니 이내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었다. 쫓아도 보고 밥그릇을 텅텅 비워둔 채 며칠을 그냥 나 몰라라 해 봤지만, 맘 여린 내 성향을 어미는 이미 꿰뚫고 있는 듯했다. 결국, 나는 후안무치한 그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배만 부르지 않았어도…….’ 비록 짐승이지만 새끼 가진 어미를 내 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이라는 것이 바윗덩어리처럼 내 심장 위에 얹혀 계속 짓눌렀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듯, 새끼를 품은 모성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을 것이라 여기며 산후의 내 경험을 떠올렸다. 몸 푼다고 애먹었을 어미 고양이를 위해 미역국은 아니더라도 영양가 있는 사료도 챙겨주고 깨끗하고 미지근한 물을 꼬박꼬박 수시로 드나들며 갈아 주었다. 이왕 나온 세상이니 건강하게 살다 가기를 바랐다. 그런 나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감꽃이 떨어지듯 그렇게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주검을 수습하던 내 손끝에서 느껴지던 감촉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끝내 지워지지 않고 천둥 번개처럼 가슴을 후벼 파던, 온기가 사라진 몸피, 그리고 통나무처럼, 부드러움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견고한 죽음. 손가락 끝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이내 부러지고 말 것 같은 등피 위로 드러난 여린 가지들의 수런거림들.

집 안에 들여 집밥 한 번 먹이지도 못하고 끝까지 책임져 주지도 못할 거였으면서 ‘처음부터 모른 체할 걸…….’ 모든 것이 내 탓만 같았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누구 하나 기억하거나 기념해 줄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사소한 죽음이 내 삶의 의미를 다시금 묻게 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무덤 없는 주검, 살아 백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태어난 곳, 다시 그 자리 그대로 꺼져간 생명이 안쓰럽기만 하다. 시멘트 바닥 위, 살아 치열하게 몸부림치던 흔적만이 문신처럼 얼룩져 있다. 몇 날 며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데 절친 향이가 보낸 메시지가 뜬다.

“새끼 야옹이 죽은 거 네 탓 아니야. 그러니 힘들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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