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 승인 2019.07.0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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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귄터 그라스(Gunter Grass)는 그의 저서 <양철북> 에서 3살 때 어른 세계의 위선과 천박함에 저항하여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한 오스카의 어리석고 비정상적인 시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뒤까지 격동기 속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이 시각은 사회의 모든 터부를 무시하는 자유로운 발언을 가능하게 했다. 죽음이나 섹스에 대한 대담하고 그로테스크한 묘사나 신을 모독하는 듯한 사건은 단순히 도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나라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통제조치를 선언하면서 오스카가 3살 때 스스로 성장을 멈춘 것처럼 한일관계는 1965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공약으로 2015년에 공식합의한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으며, 대법원은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시간을 끌자 만지작거리던 카드인 한국에 수출하는 불화수소, 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등 세 가지를 규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부품은 한국 수출의 핵심산업인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에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기업에 타격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신뢰 문제를 언급했다. 이것은 1951년 9월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샌프란시스코조약, 19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2015년 위안부 합의 등 국가 사이에 체결한 조약에 대한 파기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에 앞서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전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정부가 발동한 대한(對韓) 경제 제재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대단히 나빠져 있으니 한국에 주의해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반응은 다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 심사 강화' 등 사실상 한국에 대해 경제 보복조치에 들어간 것과 관련해 정부는 관계부처 TF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점검해 왔으며, 앞으로 "우리 업계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공조 등을 통해 다각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 했다.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이 정도 경제침략 상황이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이 주판알만 튕길 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일본의 대한 제재조치를 아베 정권의 참의원 선거용으로 폄하했다. 여당 국회의원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아주 복잡미묘한 것이 현실이지만 해방 전과 후는 엄연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1868~1912년 메이지시대 때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으로부터 벤치마킹을 통해 산업화를 성공한 반면 한국은 1962년부터 산업화를 시작한 것을 감안한다면 산업화 역사의 격차는 90년 정도가 된다. 거센크론의 후발성의 이익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인 일본으로부터 기술제휴, 엔지니어의 조언, 선진화된 사업모델, 국산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일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산업화를 앞당길 수 있었다.

한국의 산업사를 보면 더 잘알 수 있다. 제2차 석유파동의 여파인 1980년대 초와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2000년대 말에는 한미일 공조로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반면 1997년에는 미일의 비협조로 IMF 경제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IMF 경기위기 당시 일본은 단기채권 만기연장을 거부로 심지어 영업이익이 순이익인 기업들도 외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까지 하면서도 수많은 직원들이 정리해고 당한 아픔이 있다.

덩샤오핑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소련이 해체되던 1990년에 중국 사회에 큰 불안감이 감돌았을 때 "냉정하게 관찰하고, 최전선을 튼튼히 하며, 침착하게 대응하면서도 능숙하고 우직하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를 강조했다.

1965년 이전으로 회귀한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만 있다면 지구촌에서 가장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일본과 화합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친일분자를 넘어 토착왜구라 폄훼하면서 반일 종족주의를 부치기까지 하고 있다. 오스카는 스스로 성장을 멈춰 그 시대의 모순을 고발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미 성장한 한국을 1965년 이전으로 회귀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국민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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