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의 미학
멍 때리기의 미학
  • 승인 2019.07.1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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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동산병원 신경과 교수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집떠나면 고생’ 이란 옛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무더운 여름의 사무실이나 집의 에어컨 아래가 가장 편하고 쾌적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7, 8월이 되면 ‘떠남’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휴가를 꿈꾼다. 일상에서 느끼는 피로함이 쉬고 오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여서일 것이다. 그러나 휴가 중에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돌아오기에 휴가 후 피곤함과 업무적응의 어려움으로 한동안 힘들어하게 된다. 일상으로부터 몸과 뇌가 떠나기는 했지만 휴식은 하지 못하여서이다.

과부하된 업무에 스트레스와 경쟁이 일상화된 현대는 편리함이란 미명하에 디지털 기기들로부터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든 상황으로 짜여져 있기에,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심신의 피로가 항상 극에 달해 있다. 현대인이 피로를 느끼고 힘들어 하는 주된 원인은 뇌의 피로이다.

수십년 전의 전공의 시절, 우리는 ‘삐삐(페이저)’ 라는 첨단(?)기기를 지급받았고 이놈은 힘든 병원 생활의 주범이었다. 요즘처럼 주당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터라 우리의 뇌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했고, 잠을 자면서조차도 ‘삐삐’에 집중했던 듯하다. 도시의 어느 지역까지는 삐삐가 신호를 보낼 수 없다고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던, 되돌아보면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휴대전화란 것이 있어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고, 집에서도 환자의 영상을 보며 토론해야 하는 세상이다. 기술력의 향상은, 심지어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가, 혹은 내 차가, 나의 환자가 어디 있는지 인식할 수 있게 해 준다. 직장의 업무처리 뿐만 아니라 날아드는 메신저 문자들. 잠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정말 편리하지만 수십년 전 보다 더 뇌를 혹사시키는 세상이다.

만성적인 뇌의 피로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으로 이루어지는 자율 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교감신경의 과부하 상태를 초래한다. 이는 신체를 긴장상태에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면, 각종 호르몬 대사 및 면역 체계에까지 영향을 준다. 수면 장애의 경우, 심혈관질환의 위험도가 증가하고 집중력 및 인지기능의 저하를 초래하고 심지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또한 당뇨병, 고혈압, 비만 등 만성대사질환의 발병도 증가한다. 즉 몸이 피곤하고 나른하다 하더라도 과로하여 피로한 뇌가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런 신체의 장애는 다시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피로도를 높이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앞서 우리의 뇌가 잠시도 쉬지 못한다고 했지만, 실제 우리의 뇌는 24시간 일을 한다. 심지어 쉬거나 수면 중에도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부위가 있는데, 이들 영역은 우리가 일을 않고 자거나 휴식할 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아무생각없이 걷다가, 멍하게 앉아있다가, 혹은 일상적인 운전과 같은 약간의 익숙한 집중 중에 갑자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해야할 일들이 정리되며 떠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쁘게 이것저것 하는 동안에는 뇌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지식과 기억들이, 멍하게 있거나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동안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뇌에 신호를 주어 공고하며 창의적이기까지한 기억이나 감정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런 과정이 정상적이고 활발하게 작동할 때 신체적 건강의 유지 이외에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 긍정적이고 편안한 감정을 가진 사람, 창의적인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일상과 관련없는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거나 낯선 문화속에서 감동을 받으며 피로를 풀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휴가의 개념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는, 시쳇말로 ‘멍 때리기’는 휴가의 상위개념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휴가때는 꼭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아무것도 않는 것을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일상과 관계없는 약간의 활동도 우리의 뇌를 편하게 할 수 있지만, 때로는 꼭 뭔가를 하기보다는 ‘멍 때리기’ 를 하며 뇌를 쉬게해 주면 어떨까.. 휴가후 업무복귀를 위해서도,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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