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의 무늬
안부의 무늬
  • 승인 2019.07.30 2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현숙

독거노인은 흰나비다

자유롭다는 건, 자식의 등을 보며 사는 무늬로
편리하다는 건, 손닿는 곳까지만 씻는 무늬로

자유와 편리에 대한
짧고 명쾌한 해석을 끝낸 독거노인은
검버섯 불러와 밥상에 앉히고
세월보다 무거운 허리 협착은
혼자 잠드는 머리맡에 눕혀둔다

노령연금이 자동이체 시킨 노인의 안부는
초인종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낡은 청력으로
옷장 앞에서 날개돋이를 준비한다

옷장 속의 질서는 새댁처럼 여전히 얌전한데
물주머니 같은 젖가슴의 늘어진 시간은
노인용 보행기를 밀고 가는 굽은 침묵 속에서
저 흰나비, 이내 곧 날아갈 듯

독거노인의 대문 열쇠를 복사한
딸은, 열쇠에 딱 걸린 안부의 무늬에 목이 메고
흰나비는, 마당의 노란 배추꽃 앞에서 하얗게 웃고

◇모현숙= 조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14),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조선문학문인회 회원, 詩공간 동인, 시집: <바람자루엔 바람이 없다>

<해설> 일찌감치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염려스러운 것이 독거노인인데, 그를 관찰해온 시인은 흰 나비라고 말한다. 자녀가 돌봐주지 못하는 노인은 백발인 채로 언제든 훌훌 날아갈 존재라는 것이다. ‘부모 살았을 제 효도를 다하라’ 했던가. 떠나고 후회한들 무엇 하리.
-정광일(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