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감성보다 이성이 필요할 때다
한일관계, 감성보다 이성이 필요할 때다
  • 승인 2019.08.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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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그의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과거의 위대한 문명사회가 붕괴해서 몰락한 이유가 무엇이고,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흥미진진한 역사·문화적인 이야기로 전세계가 직면한 하나의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스터 섬의 폴리네시아 문화에서 시작해 아나산지와 마야에서 꽃피웠던 원주민들의 문화, 그린란드에서 식민지를 개척한 바이킹들의 불행 그리고 현대 세계까지 추적해서 재앙의 기본패턴을 찾아낸다.

이를 토대로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사회들이 붕괴한 이유를 환경 파괴, 기후 변화,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 감소, 사회 문제에 대한 그 구성원의 위기 대처 능력 저하로 구분했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국에는 한 사회나 문명이 붕괴하거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자원을 낭비할 때, 환경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무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경고했지만 다른 세 가지 이유도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우리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 판결을 했으며, 이어 그 보복으로 지난 8월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웃나라이면서 우방인 일본이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가고 있다.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은 여러 차례 갈등을 겪었지만 경제문제는 논외로 둔다는 일종의 신사협정이 있었다.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신사협정이 깨어졌을 뿐만 아니라 통상안보 갈등으로 확전되고 있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일제 식민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력 우위를 바탕으로 고압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아베 정부에 대한 분노와 동일한 패전국인 독일이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취하는 낮은 자세와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정치권과 지식인들도 점점 강경한 발언을 쏟고 있다. 한겨레 신문 성한용 기자는 칼럼 ‘한-일 갈등 치킨게임의 시작이라면‘을 통해 “강자에게 힘이 있다면 약자에게는 깡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깡도 보통은 넘는다”고 주장했으며, 안도현 시인은 “우리 대통령 화 단단히 내신다. 일본을 향한 준비된 자신감과 당당함이 믿음직하다“고 했다. 또한 민간차원에서도 일본인 대표기업으로 알려진 ABC마트와 유니클로 앞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이 점점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반면 한일국제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의 일본 전문가의 시선은 심히 우려 섞여 있다. ”지난 15년 동안 한일국제 교류를 해오고 있던 지한파 일본 인사가 이번에 교류 일정을 취소했는데, 사드문제와 메르스문제 등을 겪으면서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참석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일본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 동경에 사는 한국인은 일본 속에 한국인촌인 신오오쿠보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일본 우익의 불매운동을 염려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대통령시절 독도 방문을 계기로 이 지역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한국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주일대사관과 협심하여 어렵게 이 지역 상권을 활성화 시켰는데 다시 일본 우익들의 불매운동이 일어나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한일 양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갈등을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이해하고 있다. 재러미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 이유로 지적한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 감소, 사회 문제에 대한 그 구성원의 위기 대처 능력 저하를 감안할 때. 한일관계의 악화와 출구 없는 질주는 양국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유럽인들이 유럽의 항구적인 평화를 갈망하면서 출범시킨 유럽통합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문제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과거 일제 식민지에 대한 피해의식과 국제법에 따라 피배보상을 했다는 일본인들의 시각은 결코 양립될 수가 없다.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은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라고 했다. 출구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국면에서 일반 국민들은 충분히 가슴으로 싸울 수 있지만 정부 당국자와 지식인들 마저 국민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출구전략을 위한 냉철한 머리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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