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이런 여름을 보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이런 여름을 보냈으면 좋겠다
  • 승인 2019.08.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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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견숙
경북대학교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사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며, 시를 읽거나 짓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

조선시대 서당의 방학 ‘규정’이다.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계절에 맞게 일과를 보내면서 다음 학기 학업을 위한 준비를 하자는 얘기다. 이러한 ‘방학’의 본 취지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여름방학 때 온전히 쉬고 노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반영일 것이다. 지금은 조선시대는 아니니까. 방학 때 어린 친구들이 이렇게 보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먼저 다양한 장르의 줄글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독서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학교를 마치더라도 할 일이 어른들만큼 많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만큼의 지식적 획득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하게 되고, 구조화하는 능력을 갖춘다. 살아 있는 앎을 익힌 아이들은 다양한 앎을 섞어 자신의 재능으로 창조하게 된다. 방학만이라도 호흡이 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만화책과 달리 줄글 책은 오랫동안 붙들고 있으면서 몸에 그 습관이 익어야 그 재미를 맛보게 된다. 실제로 성인이라 해도 이 재미를 깨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더불어 장르도 다양하게 골라서 읽으면 좋다. 문학 장르에만 치우쳐 있기 쉬운 아이들에게 다른 장르의 책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방학 때 가족과 함께 책 읽은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함께’라는 전제는 이상적이지만 실제적으로 어렵다. 또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그 시간이 싫어지고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여유가 될 때 아무 때나, 모든 가족이 모이지 않더라도 아이와 아빠, 아이와 엄마만이라도 시작해버리면 된다. 단, 부모님 중 한 분은 함께 하기를 추천한다. 아이들만의 독서시간이라면 아이들은 시키는 숙제 같은 것으로 이 시간을 치부할 것이다. 어른들이 함께할 때 독서는 가족의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이러다보면 방학이 끝나도 하루에 30분씩 줄글 책을 읽는 시간이 정착될 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는 아이들에게 잉여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으면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뒹굴뒹굴 지내는 시간. 아이들은 이런 시간 속에서 무언가 하고 싶어지는 의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잉여성이 창의성 발현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이야기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삶에서 여유는 중요한 역할을 해 낸다.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조급해 하지 않는 것도 부모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방학 한 달 내도록 설사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내 아이는 망하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이기 잉여의 시간을 지나서 공부를 해야 할 때라도 일방적으로 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소모적인 일을 하고 있으면서 아이에게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행동 말이다. 이러한 경험은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 대한 불신감만 갖게 한다. 아이와의 관계로 보나, 학습능력의 신장 측면으로 보나 마이너스다.

마지막 제언으로 방학에는 아이와 대화를 더 많이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사실 아이는 방학을 맞았지만 부모님의 생활은 그대로다. 여러 가지 할 일들은 고스란한데 아이까지 더 오랫동안 돌보아야 하는 마당이라, 대화까지 많이 하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그러나 방학인 아이들에 대한 책임으로 여기고, 충분히 이야기하는 시간을 틈틈이 만들 필요가 있다. 대화가 없다는 가족들이 있는데, 가족 간 대화도 습관과 같다. 이야기할 기회도 노력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굳이 먼 곳으로 놀러가지 않아도 되고, 의미심장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다. 일상 속의 대화가 흐르는 방학. 그 속에서 아이들은 이번 8월을 크게 성장하는 계기로 삼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가족 간의 관계 회복에도 기여함은 물론이다.

몇 가지 제안을 하고 보니, 내 이야기에 정말이지 새로울 것이 없다. 실천이 번거롭거나 어려워서 그렇지, 많은 부모가 이미 알고 공감하는 내용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유명 학원의 여름방학 특강 수업이 아닌, 부모님과 보낸 여름 속에서 많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방학이 끝나고 돌아올, 부쩍 자라 있을 우리 반 친구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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