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한일 경제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이효수 경제칼럼] 한일 경제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 승인 2019.08.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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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아베 수상은 정치외교 문제를 경제전쟁으로 비화 시켰다. 경제전쟁은 무력 전쟁처럼 인명이 살상되는 피해는 없지만, 잘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장기적으로 경제적 고통을 당할 수 있다. 외상은 적지만 내상이 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제분업에 의한 긴밀한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술을 갖고 있고, 일본은 한국 첨단산업의 많은 분야에서 필수적인 초정밀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소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소재 기술과 제조기술로 형성된 가치사슬이 양국에서 좋은 일자리와 부를 창출해 왔다.

경제전쟁이 심화되면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이 가치사슬이 하루아침에 붕괴될 수 있다. 가치사슬이 붕괴되면 어느 일방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기업과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 모두가 이 경제전쟁의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의 파괴적 강도가 강할수록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양국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이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제조대국에서 세계 최고의 제조강국으로의 질적 전환을 위해 전 국력을 집중하여 ‘중국 제조 2025’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제조 2025의 추진 속도는 미·중 무역전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위협적이다. 한·일 경제전쟁을 틈타 중국이 내부 완결형 가치사슬을 형성하면, 한국과 일본은 첨단 제조 시장을 중국에 내어주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일 경제전쟁이 심화되면, 트럼프의 신뢰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 리더십과 맞물리면서 한·미·일 안보체제가 거의 붕괴 수준으로 갈 수 있다. 이것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물론 일본도 북·중·러 동맹체제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아베는 상처만 남을 수 있는 경제전쟁을 왜 밀어붙이는가? 아베는 무엇을 노리는가? “한국이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한다. 현재 한일 관계의 최대 문제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문제이다.” 이것은 최근 히로시마 원폭의 날 평화기념식 기자회견에서 아베수상이 한 말이다. 아베는 차제에 경제전쟁에 대한 유무형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한국의 첨단산업 분야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여 일제 식민지 문제에 대해 한국이 더 이상 문제 삼지 못하게 하고, 평화 헌법을 개정하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바로 경제전쟁의 발단 원인과 해결 방법이 내재돼 있다.

양국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여론전을 펴고 있지만, 이미 양국 모두 국가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상호 비방전을 계속하면, 국제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은 국제 합의를 잘 지키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국가, 일본은 자유무역으로 성장해 왔으면서 스스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시킬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국가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는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로,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핵심소재의 국산화와 다변화는 한국경제의 체질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기간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첨단산업은 이미 가격경쟁이 아닌 품질 경쟁 체제에 들어가 있다.

세계 최고의 품질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관련 부품과 소재를 확보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품질이 보장되는 부품과 소재를 확보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그리고 국제분업체계의 붕괴로 어쩔 수 없이 경쟁우위가 없는 소재 및 부품의 개발에 에너지를 집중하다가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을 선도할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최근 일본 8선 중의원 나카가와 마사하루(무소속) 의원이 “양국 정부와 한·일 기업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해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2+2’ 방안을 법제화하는 법안 발의를 한일 양국의 의회에서 동시에 추진하자”라는 제안이 있었고, 한국의 하태경 의원을 비롯 양국의 몇몇 야당 의원들이 이에 동의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방법은 지난번 ‘이효수 경제칼럼’에서 제기한 해법과 동일하다. 현재 아베 수상과 일본 여당의 분위기로 보아 입법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경제전쟁의 확전을 막고, 이 문제를 반드시 정치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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