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술
그리운 술
  • 승인 2019.08.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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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학 시인

그 누구보다 술이 그리울 때 있다
외롭거나 힘들지 않아도 그럴 때 있다
김치 한 조각 없어도 골방 찾지 않아도
술이 밥보다 단 때가 있다
오른손이 채우고 왼손이 비워도
술이 누구보다 따뜻한 때 있다
그런 날이면 누가 말려도
다른 무엇 제치고 그에게로 간다
씁쓸한 만남일 수 있지만
때로는 터질 것 같은 그이지만
알면서도 그를 찾아간다
잊은 지 이미 오래인 청춘이지만
꺼져버린 중년이지만
누가 부르지 않아도
참 푸르러 좋은 날
산소 같은 시원한 바람 타고 한라산 오른 처음처럼
하얀 잎새 위에 이슬 맞으러
그에게로 달려간다

◇권순학은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과 『그들의 집』이 있고 저서로 『수치해석기초』가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기계IT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한국시인협회 및 한국지능시스템학회 회원이다.

<해설> 술에 대한 화자의 적나라한 심회를 잘 토로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 즘 겪어보았을 일이 아니던가. 비만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처럼 가슴에 비 내리지 않아도 가끔씩 생각난다는 술…. 화자는 어릴 적 아버지 술심부름을 가끔씩 한 적 있었고. 당시에는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대세여서 빈 주전자를 들고 톡톡 치며 백 미터쯤 떨어진 구멍가게에서 술을 사왔다. 마침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사람 키보다 더 높은 술독에서 국자가 넘치도록 퍼 주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주전자 꼭지를 신문지로 콕 틀어막아 주었다. 하지만 집에 가는 동안 박자 맞지 않으면 흘리기 일쑤였고, 화자 발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다. 심부름 횟수가 늘어날수록 꾀도 늘어 가끔은 꼭지를 열고 몇 모금씩 마시기도 했고, 아버지는 한번도 줄어든 술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술심부름이 끝날 때 즘 아버지는 막걸리 대접에 가득 한 잔 따라 주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한 대접의 술, 그는(술) 언제 즘 떠나갈 것인가를 자학하는 화자의 모습이 처량하도록 아름답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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