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랑대
바지랑대
  • 승인 2019.08.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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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빨랫줄에 내다 널면 뽀송해 질까

마당 가로지른 줄은 늘어져 있고

갓난아기도 없이 널리곤 하던 기저귀도

이젠 눈에 띄지 않는다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그것이

어머니 당신이 토해낸 피멍인지

봄비 오는 날이면 나, 이불 빨래를 하고 싶다

하긴 밖으로만 나돌던 나였으니

빨랫줄 끌어안은 아슴한 자국을

어찌 꽃인 줄 짐작이나 하겠는가

처마에서 마당을 건너 살구나무에 닿은 줄은

겨우내 나를 기다렸던 거다

지붕을 닦으며 내리는 빗물이 전하는 말

알아듣지도 못한 채 지나쳤던

쿡쿡 굳어버린 어머니 잔소리가

쐐기에 쏘인 손등이 그렇듯

아린 봉분으로 솟구쳤다

치대어 빨아도 핏기 가시지 않은 봄날

줄을 타고 건너간 빗물이 닿아서

은유에 길들여지지 못한 분홍꽃들

바지랑대 잃은 빨랫줄에 앉으니

중심 늘어진 빨랫줄이 아프다

◇이복희= 문학시대 신인상,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 회원, 구상예술제 금상, 시공간 회원, 낙동강세계평화문학상, 선주문학상 수상, 구미사우회 회원
<해설> 중심 늘어진 빨랫줄이 아프다는 화자의 심경을 알겠다. 고향 떠나 살아온 삶이 무럭무럭 익어 이제 막 고향 어머니 고통의 언어들을 마구 토해놓은 빨랫줄의 저 처렁한 애상을….

마당을 건너뛰고 살구나무에 닿은 빨랫줄이 빗물에 닿아서 은유에 길들여지지 못한 그 지난날들을 후회의 감각적 언어로 바라보는 화자 감성의 한숨이 비감미를 더한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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