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몸 희생하면 가정이 행복해요"
"내 한몸 희생하면 가정이 행복해요"
  • 대구신문
  • 승인 2010.03.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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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신문.참사랑회, 참사랑 가정 5가구 시상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한자성어다. 모든 일은 가정에서 비롯되며 가정에서 진실한 화평과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효도와 우애로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이끌어온 우리고유의 미풍양속이 점차 상실됨을 안타깝게 생각한 대구신문과 봉사단체인 참사랑회(회장 남호윤)가 이를 되살리고자 하는 운동을 전개. 경주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참사랑회는 화목한 가정 확산 운동을 위해 매일 사무실에서 운영위원회를 열고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대구신문과 참사랑회는 1차 사업으로 회칙에 명시된 참사랑 가정 5명을 선정, 30일 시상한다.

다음은 참사랑 수상자의 면면을 살펴 우리 가정의 표본으로 삼았으면 한다.

병든 어머니 돌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

<화목상> 오정화양(여 24 경주시 동천동 920-3)

전신마비 증세의 중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대학 졸업마저 접은 ‘현대판 심청‘이란 효녀가 있어 주위를 숙연케 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오정화양(24 경주시 동천동 920-3).

어머니 박남득씨(51)가 4년 전인 2007년 봄부터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병이고 불치병인 ‘루게릭’을 앓기 시작해 점차 근육이 굳어지면서 전신마비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양은 이듬해인 2008년 어머니의 병이 점차 악화,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직장을 갖고 있는 아버지 (오영철 55 코오롱호텔 시설관리)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남동생(오진식 21 아주대학 전자공학2년)에게 어머니의 병수발을 맡길 수 없이 본인이 자원하여 졸업 1학기를 남겨두고 대학을 휴학했다.

“어머니와 24시간을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고 음식을 먹여줘야 하는데다 살림살이까지 맡아하는 오양을 보고 이웃주민들이 안타까워 하지만 오양은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오히려 즐겁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제가 잠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동안 아버지나 남동생이 병수발을 하게 되면 어머니가 매우 불편해 하시기에 저는 한 순간도 어머니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오양의 딱한 사정을 보고 가족이나 친척들이 간병인을 두자고 했으나 오양은 한사코 반대 한단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어머니를 어떻게 남들에게 맡길 수 있습니까. 혹시 소홀히 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귀중한 어머니를 내 손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어머니의 병간호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어머니를 직접 자신의 손으로 의자에 앉히고 눕히고 쓰다듬고 만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정화양, 그에게서 천사의 미소는 떠나지 않는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은 오양에게 이웃들이 어떻게 밝은 표정만 있느냐고 물으면 오양은 “제가 짜증스러운 모습이나 슬픈 표정을 지으면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그래서 웃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하는 오양에게서 심청이와 같은 효심을 읽게 한다.

오양의 어머니가 불치의 병을 앓기 전까지는 4식구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부러울 것 없는 화목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자상한 아버지와 심성 고운 어머니, 활달한 동생, 밝고 맑은 정화양이 어울려 웃음꽃이 떠나지 않은 가정이었다고 이웃주민들은 말했다.

또한 오양에게는 큰아버지를 비롯해 삼촌이 3명, 고모가 1명 있는데 아버지의 5남매 우애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80세가 넘는 할머니와 큰어머니, 고모들이 자주 와서 어머니의 병수발을 거들어 주고 삼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오양은 비록 꿈과 낭만에 부풀어 온갖 추억을 만들어야 할 젊음이지만 이를 접고 어머니에게 내 모든 것을 주고 싶다고 말하며 천진한 웃음을 남겼다.


"부모님 잘 모시는 건 당연한 도리"

<화목상> 권옥규씨(여, 55, 경주시 동방동 386-3)

“제가 취업하여 부모님을 좀 더 잘 보살필 수 있게 된다면 한이 없겠습니다.” 중풍에다 치매까지 앓고 있는 82세의 친정어머니와 아직까지는 움직이는데 별지장이 없으나 노환 증세를 보이는 92세의 친정아버지를 돌보며 혼자 살고 있는 권옥규씨(55, 경주시 동방동 386-3).

친정부모라는 표현이 매우 어색하다며 그냥 아버지, 어머니로 부른다고 한다. 권씨는 34년 전인 21세 때 부산 모 인쇄소에 근무하던 안모씨(57)와 중매로 결혼했으나 남편이 폭력성이 강해 결혼 5개월 만에 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권씨의 요구로 이혼했기 때문에 위자료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결혼 때 받은 폐물까지도 모두 돌려주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그 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결혼이라는 말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권씨는 가족이나 주위에서 강력히 재혼을 권하지만 처음 결혼에서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아픈 상처로 인해 결혼은 완전히 접었다고 한다.

이혼이후 남편에게 쏟을 정성을 부모님 모시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며 자신만 바라보며 간신이 살고 있는 노부모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라고 말한다.

“남들은 저를 효녀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 잘 모시는 것은 자식 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효녀라는 말이 부끄럽습니다. 저의 일과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얼마만큼 잘 모시야 할지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저만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이 한없이 불상하기 때문입니다.”

권씨는 어머니가 5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화장실이나 목욕을 하고 싶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자신이 미리 알고 행동에 나서면 어머니가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하게 생각 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권씨에게는 오빠가 2명 있고 언니와 여동생 등 모두 5남매가 있는데 이혼하기 전에는 부모님을, 혼자 살고 있는 큰 오빠(66)가 모시고 있었으나 몸이 아파 수양하려 절에 들어가는 바람에 자신이 돌보게 되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군무원으로 재직하는 작은 오빠(58)는 시누이가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데다 갑상선을 앓고 있어 부모님을 모시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현재 살고 있는 10평 남짓한 시골 조그마한 집에 부모님을 계시도록 하여 권씨가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권씨는 어떤 곳에든지 취직하여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나섰으나 연령제한에 걸려 취업이 안 되는 통에 오빠와 자매들이 조금씩 도와주는 돈으로 간신이 살림을 꾸려간다고 말했다. 권씨는 자신의 취업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고 간호학원을 다녀 지난 2월 수료 했다는 것이다.
권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은 취업을 위한 것도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잘 돌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도 말해 마디마디 깊은 효심을 드려내기도 했다.


25년간 시누이 둘을 내 몸같이 보살펴

<우애상> 박점옥씨(여 60 경주시 건천읍 조전리 170)

형제자매간의 깊은 우애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다.

후천적인 장애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와상상태)있는 1급 지체장애인 2명의 시누이를 20여 년간 내 몸같이 보살펴온 박점옥씨(60 경주시 건천읍 조전리 170).

그를 두고 이웃들은 말없는 천사라고 부른다. 박씨가 남편 윤경도씨(66)와 결혼한 것은 1975년 25살 때이다.

박씨가 결혼하기 전인(워낙 오래돼 가족들이 기억조차 못함) 1950년대에 이미 큰 시누이(86)는 결혼하고 시누이 남편이 6.25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상이 되어 투병하다 몸을 다쳐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작은 시누이(69)는 1960년대 농사일을 하다 척추골절상을 입고 시집도 가지 못한 채 역시 종일 누워 있다고 한다.

박씨의 결혼 당시만 해도 손위 동서가 두 시누이를 보살피고 있었는데 10여년이 지나자 위암으로 타개하는 바람에 혼자 있는 시숙에게 시누이들을 맡기지 못하고 자신이 손발이 되어 수발하겠다며 자원 했다고 한다. 박씨의 시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시숙 이외 누워있는 시누이 두명, 그리고 출가한 75세의 시누이 한명이 있지만 모두 고령들이라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박씨가 시누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날 이후 25년간을 시부모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며 더더욱 자녀들도 아닌 시누이들의 치료는 물론 대소변을 받아내고 씻어주고 음식까지 먹여주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묵묵히 실천해 왔다. 그 것도 2명의 시누이를. 주위에서는 이를 두고 우애 깊은 집안이라며 찬사가 대단하다.

특히, 큰 시숙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시골의 8평 남짓한 자그마한 집에 시누이들이 기거하고 있는데 박씨와 한마을이지만 500여 미터 떨어져 있어 하루 4~5차례 오가면서 수발하는 것이 더 어려움을 겪게 한다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시누이들이 나도 모르게 불편해 할 때,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좀 더 편안하게 모시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함이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2년 전부터 정부가 지원하는 요양보호사들이 평일에 시누이들을 돌봐주기에 마음이 한결 가볍단다. 박씨는 주말과 휴일 이틀 동안만 뒷바라지 할 정도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박씨의 일은 시누이들 돌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일하는 농장의 일도 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젖소 30~40 마리를 항상 키우고 있다. 젖소 사육은 일이 엄청 많아 하루 종일 두 사람이 매달려야 한단다. 젖소 사육으로 살림을 꾸려가야 하기 때문에 박씨는 더욱 힘든 생활이라고 말한다.

“저는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들도 딱한 사정을 보면 도와줘야 하는 입장인데 우리가정의 시누이들을 돌보는 것이 왜 착한 일이라고 합니까? 저의 도리인데요.” 박씨도 4남매(3남 1녀)를 두고 있지만 출가하거나 직장 따라 모두 집을 떠나 남편과 단 둘이 외롭게 살기에 두 시누이들이 더욱 가여워 다시 찾아본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온갖 시련 가족들 힘모아 견뎌내

<행복상> 임세원씨(72, 경주시 남산동 1091)

오른쪽 팔을 잃은 불구에다 94살의 노모와 퇴행성관절염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의 시중을 들며 농사일 까지 도맡아 하는 70이 넘는 노인이 시골마을 주민들로부터 화제를 낳고 있다.

경주 남산 기슭에서 전형적인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임세원씨(72, 경주시 남산동 1091)는 30년 전만 해도 비록 임시직이지만 공무원 생활을 했다. 임씨는 1961년도에 현재의 아내 김경식씨(70)와 결혼한 후 4남매(아들2명 딸2명)를 낳고 어머니(94)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80년 당시 임씨가 경주역 영지건널목 간수(임시직 공무원)로 있으면서 기차가 건널목을 지나는 것을 보고 막사로 돌아왔는데 같이 근무하던 간수가 들어오면서 임씨의 오른쪽 팔에 피가 많이 흐른다고 말해 팔을 보려고 했으나 팔은 들리지 않고 심한 통증이 느껴져 바로 병원으로 뛰어 갔다고 한다.

임씨는 당시 기차가 팔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팔이 뿌려졌는데 아마도 그 것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오른팔 절단수술을 하고 왼쪽 한 팔로 생활해야하는 황당하고 비참한 생활이 연속돼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임씨의 사고로 인한 보상은 당시 한 달 월급정도 뿐이었다고 했다.

이로 인한 후유증은 바로 아내에게로 몰려왔다. 아내는 이때 18살인 큰아들과 그 아래 어린 3남매의 뒷바라지를 혼자서 해야 하고 3천 평이 넘는 농사일을 도맡아야 하는 짐을 지게 되었다. 아내는 임씨가 한쪽팔로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4~5년 동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농사일에 시달리고 자녀를 보살펴야 하는 고된 생활로 인해 퇴행성관절염을 앓기 시작했고 그날 이후 모든 일이 임씨에게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임씨는 20여년을 왼쪽 한 팔로 농사일을 하면서 걸음걸이조차 어려운 노모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의 시중까지 들고 있지만 짜증 한번 내지 않은 생활에, 출가한 자녀들이나 동생들이 감탄했다고 이웃들이 전하고 있다.

“내가 방황하는 동안 어머니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불효에다 온갖 굳은 일에 시달리게 한 아내를 보면 안타갑기 그지없습니다. 저 때문에 아내가 병을 얻어 누워있는 것을 볼 때마다 자책이 앞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임씨는 자녀들을 제대로 출가시킨 것도 아내의 정성이며 4남매가 유달리 우애 깊은 것도 아내의 교육 덕분이라며 모든 공과를 아내에게 넘겼다.

임씨의 요즘 하루 일과는 어머니의 불편한 점에 대해 알아보는 아침저녁 문후와 아내의 손발이 되어 살림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임씨에게는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 그리고 5종반이 있는데 이들은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제사 때에도 모든 일을 제처 두고 50여명이 참석하는 등 집안 간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우애 깊은 가정이라고 자랑하며 밝은 미소를 흘린다.


다문화 가정 '본보기'로 감동줘

<행복상> 이지현씨(본명 보티항 40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1094)

국제결혼이 농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베트남에서 우리나라 농촌에 시집온 주부가 한쪽 다리를 절단한 82세의 시아버지와 치매에 걸려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79세의 시어머니를 정성 컷 봉양하고 있어 다문화가정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베트남의 작은 마을 바그레에서 8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우리나라 농촌으로 시집온 이지현씨(본명 보티항 40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1094).

이씨는 2005년 5월에 13세의 연상인 현재의 남편 김석진씨(53) 결혼했다. 이씨는 가난한 시골의 8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을 공부시키느라고 본인은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35세의 늦은 나이에 현재 남편 김씨와 국제결혼회사를 통해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

이씨의 남편 또한 첫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내 아가씨로서는 농촌에 재취로 시집올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부득이 국제결혼알선회사에 의뢰하여 이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이씨는 결혼 후 딸을 낳아 키우면서도 한쪽다리가 없어 고생하는 시아버지의 다리 역할을 하고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정성 컷 봉양하며 7백여 평에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농사일도 밤늦게 까지 열심히 거들고 있다고 주위에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다.

“몸으로 때우는 일은 고되지도 않습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한국의 예절이라든가 하는 정신적 고통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시어른들을 잘 모실지 그것이 걱정이며 무조건 열심히 돌보는 일 밖에 모릅니다.”

이씨가 제일 고통스러운 일은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위험한 일도 서슴지 않은 시어머니의 행동이라고 말한다. 혼자서 밤잠도 깊이 들지 못할 정도로 시어머니의 행동을 지켜보아야 한다며 조용히 웃는다.

이씨는 한국에 시집 온지 5년이 지났으나 아직 이곳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워 자신이 가진 진심들을 시집 식구들에게 알릴 수도 없다며 자신의 생각은 온통 우리가정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까 하는 생각뿐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그 행복의 일환으로 시부모들을 잘 모시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지난 2월부터 경주에 있는 대한요양보호사교육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풍습을 잘 몰라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면서 한국 생활을 배우다 보면 시부모님과 시누이 시동생들에 대한 예절도 함께 배우게 되리라 믿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한국 사람이니까 그에 따른 모든 의식을 갖춰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씨는 결혼한 손위 시누이 한명과 세 명의 시동생과 자주 왕래 하면서 형제 자매간의 우애도 돈독히 하고 있는 만큼 이제 손색없는 한국 주부가 될 것이라며 아직까지 공부를 제대로 못 다한 효(孝)와 예(禮)에 대한 개념을 실행에 옮길 날만을 준비하는 등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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