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서기, 酷暑期
혹서기, 酷暑期
  • 승인 2019.09.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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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 후에도 오래 동안 내리지 않았으며
천공에서 푸른 소용돌이가 일었고 깊이를 더 했다
그림자를 늘어뜨린 나무들
붉은 심장이 뛰는 몸들 뜨겁게 달았다
침엽수 이파리들 날카롭게 뻗쳤으며
말과 말은 귓밥에 맴돌다가 흐려지고
새들은 말꼬리를 입에 물고
나무와 나무를 소문처럼 날아 다녔다

그 후에도 숲은 이미 한 계절이 떠나고
다른 계절이 오고 있었으며
굴참나무는 일찍 발등 아래에 잎을 내리고
겨울 너머 먼 골짜기에서 오는 계절을 맞는 채비를 했다
마른 풀 대궁이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
골목은 마른 흙이 먼지를 일으키고
발걸음 소리들이 크게 울렸다

잠들지 못하는 어떤 영혼은
구름이 몰려 와서 솜사탕처럼 녹으며
굴참나무 위로 비를 흩뿌리는 걸
인도주의라고 했다

 

혹서기가 숲을 지나가는 동안
메마른 하천은 바닥에 돌들을 드러내고
그 후에도 오래 풍경은 흐르지 않았다

◇홍성은= 1963년 강원 태백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대구,경북지역대학 반월문학상 대상 수상(10)

<해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은 모두가 숨죽인 시간이었다. 사계절이 있어 봄엔 꽃피고 여름엔 장마도 오고,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눈과 추위가 있어야 자연이 내린 풍미를 맘껏 느낄 수 있다. 한 계절의 정체된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초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질문명의 편리함에 자연이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숨 막힌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씩 숨통 트는 법을 자연에게 구할 일이다.-김인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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