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나의 자전거
[문화칼럼] 나의 자전거
  • 승인 2019.09.18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정말 힘들었던 작년 여름에 비하면 금년 더위는 한결 수월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절은 쉬 지나가지 않는 터. 추석이 가까워지자 날씨는 거꾸로 가는 듯 오히려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게다가 태풍에 이은 가을장마까지 더해서 후텁지근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추석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하늘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그야말로 가을날이 펼쳐졌다. 이런 가을에는 자전거타기가 제격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자전거로 5분이면 금호강변에 다다른다. 이곳 자전거 길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사대 강 사업에 따른 장단점을 죄다 평가할 안목은 없지만, 적어도 이 사업에 따라 조성된 자전거 길과 주변 생활체육 시설은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즐기는 공간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구비 구비 펼쳐지는 강을 바라보며 자전거로 달리노라면 가슴속 찌꺼기는 맞바람에 죄다 쓸려 사라져간다.

나는 걷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걷는 것은 자유로움”이라는 한마디로 정의 할 수 있을 만큼, 걷는 것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전거도 틈나는 대로 즐긴다. 자전거로 달리는 맛은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우선은 적당한 속도감이다. 이곳에서 저곳 까지 이동할 때 자전거는 걷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이런 속도감은 그 자체로 상당한 쾌감을 준다. 그리고 운동 효과도 시간 대비, 걷는 것의 두 배 가량 된다고 한다. 강변길 같은 평지와 달리 언덕길을 넘노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뒤에 나른한 평화가 곧 뒤따른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를 때, 길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올 뿐 아니라 기어의 톱니까지도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내 몸이 나의 기어인 것이다. 오르막에서,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과 허파는 바퀴와 길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땅에 들러붙어서, 그것들은 함께 가거나, 함께 쓰러진다.’ 자전거와 오르막의 상황에 대하여 이보다 더 리얼한 표현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접이식 자전거도 한 대 장만 했다. 자가용으로 여행을 다니면 목적지까지 이동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빠르지만, 그곳에 도착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주차 등의 문제로 머물러야할 곳을 지나쳐 버리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묘하게 자동차에 얽매인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에 비해서 시외버스로 실어간 접이식 자전거를 펼치면 그 순간부터 자유로움이 주어진다. 약간의 체력적 수고만 감수하면 아무 곳 에서나 멈추고, 그곳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가까운 경주나 멀리 강릉 같은 곳을 이런 방법으로 다녀오면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경주 정도는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현지에서 이용해도 좋다. 하지만 강릉은 대구에서 직접 운전해서 가기에는 너무 멀다. 접이식 자전거를 휴대한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오가는 길에는 책도 읽을 수 있고, 다운 받아 놓은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게다가 여행길에서 운동까지 하게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한 때 자전거로 국토 종단하는 젊은이 들이 많았다. 지금도 제주도 같은 곳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코스가 여전히 인기다. 하지만 이제는 위험한 차도 한 켠에서 달리지 않더라도 사대 강 종주 길을 이용하면 안전하게 몇날 며칠씩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먹을 곳 잠잘 곳에 대한 걱정도 거의 없다. 이 길에서는 계절의 변화도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음 맞고 신체 조건이 비슷한 친구와 함께한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도심에는 자전거 길이 잘 조성되어있다. 길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권리가 확실히 주어진다. 그 길은 라이더의 길이다. 누구도 그들을 방해 할 수 없다. 우리도 이런 인프라를 갖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훈의 책에 이런 대목도 나온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그렇다! 걷기만큼이나 자전거 타기는 정직한 운동이자 이동 수단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나의 힘찬 몸짓으로 저어가는 모든 시간과 길은 나에게 특별한 순간과 경험이 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축복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