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동네 보캅, 화려한 색깔마다 해방의 기쁨이…
무지개 동네 보캅, 화려한 색깔마다 해방의 기쁨이…
  • 박윤수
  • 승인 2019.09.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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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 정상풍경 관광
강풍에 케이블카 중지로 지연
전통 기념품 다 모인 ‘그린마켓’
과거엔 노예매매 이뤄진 장소
인종차별 역사 품은 ‘디스트릭트6’
강제이주 정책 적나라한 단면 비춰
시티버스 타고 시그널힐 도착
일몰의 감흥 취해 또 하루 마감
보캅지구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선 보캅지구.
 
그린마켓
400년 전통의 아프리카 공예품 시장 그린마켓.
 
디스트릭트6박물관2
아파르헤이트 시절, 유색인종들이 당한 수난을 보여주는 디스트릭트6 박물관.
 
시그널힐일몰2
시그널힐에서의 일몰.

아프리카<19> - 남아프리카공화국 3


케이프타운에 온 지 나흘째. 날씨는 쾌청한데 바람이 제법 분다. 스마트폰앱으로 확인하니 테이블 마운틴 전망대를 오가는 케이블카가 강풍으로 운행중지라고 뜬다. 2일이나 3일 일정으로 이곳에 온 여행자들은 기상악화로 인해 테이블 마운틴을 제대로 올라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보통의 패키지 관광객들은 시내관광을 하다가 케이블카가 운행한다는 시그널이 뜨면 일정을 중지하고 승강장으로 모인다고 한다. 바닷가에 1천86m가 넘는 산이다보니 바람과 구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구름이 낀 날은 케이블카는 운행하지만 정상에 올라가도 구름속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일도 있다고 한다. 어제는 비와 바람으로 오늘은 바람으로 테이블마운틴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시티버스 티켓도 2일짜리인데 오늘 테이블마운틴을 못가게 되면 하루 더 연장해야 한다.

케이프 탐나여행사를 운영하시는 홍실장님이 시내 외출할 계획이 있다고 해서 오늘은 우버를 부르지 않고 신세를 지기로 했다. 사모님께서 운전하시는 승용차를 타고 다시 워터프론트로 나간다. 워터프론트에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롱스트리트로 가서 오늘은 옐로우라인 버스를 타고 도심 명소를 돌아보기로 했다.

롱스트리트에서 환승을 하기위해 하차해서 골목길을 따라 5분정도 걸어 가면 작은 광장에 노점 좌판을 편 그린마켓이 있다. 그린마켓은 17세기부터 유럽에서 동방으로 지나가던 뱃사람들이 신선한 야채 과일 등 필요한 물건들을 거래하면서 시작됐다. 케이프타운 중심가에 있는 400년이 가까워지는 전통의 아프리카 공예품 시장으로 각종토산품과 가죽공예품, 전통의상 그리고 기념품, 일상용품들 등 볼거리, 살거리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다. 이곳은1834년 남아공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전까지는 노예들을 매매하던 슬픈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그린마켓을 지나 보캅(BoKaap)지구로 발을 옮긴다. 중심가에서 보캅까지는 걸어서 30분이 채 안되는 1km남짓한 거리로 이곳은 300년 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동인도회사에서 케이프타운을 건설하기 위해 인도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다 살게 한 곳이다. 길 양 옆으로는 외벽에 파스텔 톤의 초록, 노랑, 파랑, 핑크색 등의 칠을 한 2, 3층 건물들이 시그널힐 방향으로 얕은 경사로를 따라 줄지어있다. 백인들에게 인종차별을 심하게 받았던 당시 무슬림 거주민들은 1991년 인종차별 정책 폐지 후 1994년 넬슨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의 완전한 폐기 선언을 환영하는 뜻에서 본격적으로 보캅의 건물들을 다양한 원색으로 칠하게 된다. 지금은 많은 여행객들이 즐겨찾고 각종 광고를 촬영하는 명소이지만 사실은 인종차별의 고통과 해방의 기쁨이 공존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보캅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롱스트리트로 돌아 왔다. 케이프타운의 또 다른 역사적 아픔을 찾아 도심을 순환하는 옐로우라인 버스를 타고 디스트릭트6 (District#6)박물관을 찾았다. 디스트릭트6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내에 있었던 흑인들, 해방된 노예, 유색인, 이민자들이 살던 주거지의 하나이다. 인종차별정책의 일환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정부는 1966년부터 1982년까지 이 곳에 거주하던 유색인종들과 흑인들을 시의 외곽 저 멀리 척박한 땅 케이프 플랫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테이블마운틴과 항구에 가까운, 도심의 알짜배기 땅인 이 지역에 살고 있던 6만명의 유색인종과 흑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붙여 쫓아내고 재개발하여 백인들만의 거주지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지역은 남아공의 슬픈 역사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박물관 내의 바닥에 그려진 시가도와 벽의 걸개그림, 그 당시의 신문과 폐허가 된 보금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갈 곳 없이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며 가슴 아려옴을 느낄 수 있다. 잘못된 정책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도심투어를 마친 후 롱스트리트 정류장으로 다시 나왔다. 강풍으로 운행 중단된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가는 레드라인 버스를 탔다. 시티투어버스들은 노선에 따라 한방향으로만 운행한다. 롱스트리트에서 워터프론트까지는 10여분 거리지만 그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야만 한다. 2일짜리 승차권을 산 우리는 레드라인 버스를 타고 테이블마운틴으로 출발했다. 도심을 벗어나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 전망케이블카 승강장에 정차한다. 차에서 내려 운행이 정지된 전망 케이블카 건물을 둘러 보고 맑은 하늘의 케이프타운 시내를 내려다 본다. 케이프 만을 끼고 조성된 시가지는 아름다운 가로를 구성하고 있다. 다시 시티버스의 지붕이 없는 2층에 앉아 풍경을 만끽하며 고갯길을 내려가 대서양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케이프타운의 부촌 캠스베이(Camps Bay)를 지난다. 버스에서 내려 해안을 거닐어 본다. 테이블마운틴을 등지고 대서양을 바라보는 케이프타운 최대의 휴양지인 캠스베이(Camps Bay)는 백만장자의 해변이다. 전 세계 유행의 첨단을 이끄는 패션모델들이 모이는 곳이라고도 하고 프로포즈의 명소로 케이프타운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비치다. 도로 옆에 줄지어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해변의 풍광과 지는 해를 즐기며 음료를 마시며 식사도 하고 있다.

우리는 워터프론트로 가서 시그널힐에서의 일몰을 보기로 했다. 서둘러 캠스베이를 나와 시티버스를 타고 돔형식의 케이프타운 그린포인트 스타디움과 씨포인트를 지나 워터프론트 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서 오늘 강풍으로 못 탄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2일권을 하루 연장해서 3일권으로 바꾸고 시그널힐 야경(Signal Hill Sunset) 투어버스(2일권 이상이면 무료 탑승)에 올랐다. 버스는 다시 롱스트리트를 거쳐 테이블마운틴 승강장 4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시그널힐로 향한다. 테이블마운틴에서 라이언헤드를 지나 꼬리부분인 이곳은 매일 정오에 포를 쏘아서 시각을 알린다고 해서 시그널힐이라고 부르며, 이 곳에서는 넬슨만델라의 수감지인 로벤섬(Robben Island)와 케이프타운 도시 전경 그리고 대서양 해안과 아름다운 하얀 캠스베이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시그널힐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도착하니 많은 이들이 모여 일몰을 기다리고 있다. 포토존인 사진액자의 조형물에서 라이언헤드와 테이블 마운틴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단체 여행객들은 샴페인파티를 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일행들과 가벼운 음료나 와인, 맥주 등을 마시며 대서양으로의 해넘이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콘스탄시아와인 한병을 가지고 갔다. 와인오프너가 없어 여행객들에게 빌려 와인잔에 한잔 따뤄 일몰의 햇빛을 잔에 채워 같이 마신다.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감흥에 취해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해가 바다에 들어가고 난 후 구름에 비치는 노을을 보며 다시 버스로 돌아와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려 앉은 케이프타운의 보석처럼 빛나는 금빛야경이 언덕을 내려오는 내내 빛난다.

다시 워터프론트로 돌아와 우버택시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하루를 마치며 귀가길 수퍼에 들러 돼지고기 목살을 사서 케이프탐나의 사장님과 함께 식당 바깥 데크에서 남아공식 바비큐 요리인 브라이(braai)를 해서 와인과 함께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 기상을 체크하니 케이블카 운행이 가능하여 아침 일찍 우버를 불러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기대되는 내일을 위해 일찍 침대에 들었다.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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