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맞선 자리
어떤 맞선 자리
  • 승인 2019.09.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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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정보 대표
교육학 박사
A 씨는 예의 바르고 겸손한 남성이라 담당 커플 매니저는 그가 맞선에 실패할 때마다 안타까워했다. 이런 남성과 결혼하면, 책임감도 강하고 가정적이며 아내에게도 참 잘할 수 있는 분인데... 회원 관리를 하면서 많은 남녀들을 만나지만, 매니저들도 인간인지라 특별히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매니저의 애정 어린 푸념을 귀로 흘릴 수 없어서 A 씨와 잘 어울릴 것 같은 한 여성을 떠올렸다. 그녀는 천주교 신자이며 첫인상이 수수해 보이는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이다. 첫 상담 시에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날의 얘기를 솔직하게 풀어냈다.

자신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있어서 직장생활이 힘들었다고 했다. 처음 직장 생활할 때, 윗선배의 갑질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이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매끄럽지 못한 인간관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녀를 항상 괴롭혔다. 그래서 약간의 우울증이 와서 휴직을 하고 몇 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곧 복직할 예정이라 했다.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은 작은 상처에도 남들보다 몇 곱절로 힘들어하고 현대인들은 누구나 감기 같은 우울증 증세를 경험한다고 위로했다. 그녀는 자신을 잘 아는지라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상처를 보담아 줄 수 있는 큰 오라버니 같은 착한 배우자를 원했다.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 못하는 성격이 그녀를 더 힘들게 한 것 같았다.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싫고 좋음의 의사를 명백히 표현하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편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라고 어드바이스 했다.

그녀의 깊은 상처와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적격자가 A 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화려한 스펙과 조건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많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A 씨에게 그녀의 현재 상황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맞선을 주선했다.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씨의 A 씨와 여린 마음의 소유자인 그녀가 천생연분이 되리라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아뿔싸’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A 씨는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려고 평생에 처음으로 얼굴 마사지를 받고 향수까지 구매했다. 맞선을 본 그 다음 날, 그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약간은 흥분한듯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주로 금전적인 부분이 주제였다고 한다. 일방적인 그녀의 질문 공세에 그는 화가 났지만,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인내심을 갖고 참았다.

“대출은 있으세요? 모아둔 돈은 얼마나 되죠? 아파트는 몇 평이에요? 연봉은 얼마나 되죠?”

그녀의 말에 짜증은 났지만, 대략 얼마 정도 모아두었다고 하니까, “그것 밖에 안돼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분이 상했지만, 화제를 돌려 여행이나 유명한 맛집 이야기를 하니까 관심 없다는 듯이 폰을 만지작거리며 누구에겐가 메시지를 날리고 있었다. 금전 얘기를 할 때는 눈빛이 반짝거리다가도 다른 화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처음 맞선 자리지만, 면접받은 느낌이었고, 너무하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서 예의만 지키고 먼저 일어섰다. A 씨로부터 그녀의 상식 밖의 행동을 전해 듣고, 어이가 없었다. A 씨에게는 또 다른 인연을 찾아주겠다고 미안함 마음을 전했다.

상담 시에 자신의 단점을 얘기하면서 돈이나 능력보다 마음이 따뜻한 남자가 우선적인 조건이라던 그녀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열 속 물 속 깊이는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첫 맞선 자리에서 상대가 어떤 인격과 됨됨이를 가졌는지 탐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맞선 자세다. 근데 만나자마자 상대방의 연봉, 재산, 차, 집 등에 대해 물질적 조건만을 묻는 그녀의 이중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면 사랑이나 두 사람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을 돈 버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에 김치녀라는 신조어가 여성 혐오 비하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남성에게 의존하는 이기적인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는 맞선 전날 밤에 혹 돈 많고 능력 있는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꿈을 꾼 것일까?

따뜻한 사랑을 갈구하던 그녀의 애잔한 눈빛이 스쳐 지나간다. 물질만능의 마법에서 풀려나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 마음씨 착한 배우자가 나타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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