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팔조, 박선 ‘물의 척추’展
갤러리 팔조, 박선 ‘물의 척추’展
  • 황인옥
  • 승인 2019.09.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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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공통성 발견하기 위해 물 추적”
과학적·현상적 특징 분석해 추상화
조각 10여점·설계 드로잉 등 선봬
조각가-박선
조각가 박선이 갤러리 팔조에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눈앞에 놓여있는 의자를 누군가가 망치로 내리쳐 박살을 냈다고 치자. 의자의 형태는 오간데 없고 산산조각 난 잔해들만 남았다면 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NO’다. 그렇다면 궁금증 하나, ‘과연 의자를 의자로 만드는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본질에 관한 질문인데, 조각가 박선은 이에 대해 ‘척추’라고 말한다. 그에게 척추는 본질의 다른 이름이다. “사과를 잘라서 즙을 내면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 주스가 됩니다. 즙을 온전한 형태인 사과로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존재의 ‘본질’에 해당하는 ‘척추’죠.”

박 작가가 탐구하는 쟁점의 핵심은 존재의 본질을 ‘출발선에서 찾을 것인가?’, ‘결승점에서 찾을 것인가?’의 문제다. 이 쟁점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물질은 다양한 원자들이다. 원자는 생명체인 인간의 출발선에 해당된다. 이 원자들이 모여 몸통과 머리, 팔과 다리가 형성된다. 척추는 이 모든 것을 연결해 인간이라는 외형을 완성하는 마지막 결승점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본질은 ‘원자>신체를 구성하는 부속체>척추’ 순이다. 그러나 작가는 ‘척추>신체를 구성하는 부속체>원자’ 순으로 좀 다르게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본질과 다를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본질은 그것을 그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척추인거죠.”

조각가 박선 개인전 ‘물의 척추’전이 갤러리 팔조에서 최근 시작됐다. 전시에는 물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 10여점과 설계 드로잉 등을 소개한다. 전시된 조각들은 산소와 수소가 공유결합을 통해 물이 되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작품의 형상은 최초 원자인 핵에서 출발해 코마(coma·혜성의 핵으로부터 방출된 가스나 미립자가 구상으로 퍼져서 빛나는 부분) 형태로 확장하고 그 주위를 하늘로 치솟은 여러 가닥의 척추선들이 감싸는 형국을 취한다. 재질은 스페인레스며 볼트와 너트를 이어서 제작한다. 작가가 “산소와 수소가 만나 물이 되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물 분자를 이루는 산소·수소·산소의 결합은 104.5도의 각도를 이루고 있으며 굽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이 불균형 구조 때문에 서로 결합해 물이 되는 원리죠.”

왜 물이었을까?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 옛날 지구의 역사로 되돌아가야 한다. 약 6,500만년전 지구의 절대강자였던 공룡이 멸망했다. 학계는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설에 힘을 실었다. 이 사건으로 공룡은 멸망했다. 하지만 작가는 “멸망이 곧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했다. 그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때 다양한 물질들을 지구에 남겼고, 특히 소행성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내용물인 얼음덩이가 지구의 물과 만나 지구물의 구조가 달라졌다”는 과학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가 물에 주목한 결정적인 원인은 산소와 수소의 공유결합에 있다. 두 물질이 부족한 것을 상대에게서 채우는 공유결합 과정에서 굽은 모양이 형성되는데 그것이 물의 척추, 즉 물의 본질이라는 것. “굽은 모양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지구가 다양한 생명체들이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에요.” 작가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서의 물과 혜성이 물로 오는 그 옛날 과거의 한 사건을 동시에 다룬다. 물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이 의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로 귀결된다.

“‘물의 척추’는 물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통한 생명의 기원에 대한 탐구, 그리고 물의 성질을 관찰함으로 모든 세상의 물질, 존재의 공통성을 발견하기 위한 작업이에요.”

조각가 박선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낭시 국립미술학교(B.D.E, 조형예술전공)을 졸업했다. 귀국 후 고향인 포항에서 공공조각과 도시재생 등 공공미술에 더 열심이었다. 그는 포항에서 ‘숲속 미술학교’도 운영해왔다.이 때문에 조각가로 그의 이름은 아직은 낯이 설다. 지난해부터 갤러리 팔조에 전속되면서 조각작업을 본격화했다.

그가 “갤러리 팔조 김중희 관장님의 심폐소생술 덕분에 새롭게 태어났다”며 팔조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본격적인 조각가의 삶을 위해 이름도 박성찬에서 박선으로 개명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공공미술에 집중하느라 개인 작업과 멀어졌어요. 다시 시작할 계기를 갤러리 팔조가 만들어 주어 본격적으로 조각을 해 볼 생각입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054-373-6802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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