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이동재, 사람과 동일선상에 둔 ‘개’…더불어 사는 삶 향한 발걸음
[서영옥이 만난 작가] 이동재, 사람과 동일선상에 둔 ‘개’…더불어 사는 삶 향한 발걸음
  • 서영옥
  • 승인 2019.09.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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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활력 심어준 유기견
세밀묘사 없이 간명하게 표현
개는 주인공, 사람은 엑스트라
고정관념 깨고 현실 비틀기 권유
이동재 작
이동재 작.
 
이동재 작-자세
이동재 작.

매체나 표현방법이 다를 뿐 화가들은 종종 일상을 그리고 싶어 한다. 미술사는 일상을 그린 그림을 풍속화로 분류한다. 풍속화(장르화)는 오락이나 동물, 풍경, 정물 등을 묘사한 그림을 지칭하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다. 평범한 삶의 장면을 그린 그림은 16세기에 와서야 인기를 얻었다. 인정이 종교화나 역사화보다는 훨씬 늦다. 18세기 말에는 장르화라는 용어가 친숙한 시골생활을 묘사하는 말로 한정되기도 하였다. 엄밀하게 따지면 화가 이동재의 그림도 풍속화(장르화)로 보아야할 것 같다. 그의 시선이 온통 일상과 동물에게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에선 16세기 중엽부터 동물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과 이동재가 그린 ‘개’ 그림과의 접점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서양화 전공자이면서 줄곧 서양화기법으로 작업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재 면에서 김두량이(조선시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삽살개’와 비교하는 것은 무방할 것 같다. 활달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필치의 ‘삽살개’가 동물적 기질이 잘 드러난 그림이라면 이동재가 그린 ‘개’는 다소 의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는 붓으로 움직이는 털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한 ‘삽살개’에 비해 이동재의 ‘개’는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묘사법이 상반된다. 이동재는 ‘개’라는 존재 자체에 주목한 것이지 동물의 역동적인 기질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동재의 개는 ‘동물’ 또는 ‘생명체’의 가치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봄이 옳다. 작가는 개를 통해 존재의 존귀와 본질을 통찰한다. 그가 화면에 동물과 사람을 수평적으로 배치한 이유이다.

작가 이동재는 8년 전에 다시 화가로 돌아왔다. 대구로 와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은 4년 전부터다. 고향과도 같은 미술계로 돌아오는데 약 20년이 걸렸다. 1990년대 초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부터 작업을 멈춘 삶이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운명은 화업과 먼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지난했던 화가의 과거를 비춘 것은 흰 새치머리만이 아니었다. 아픈 인연 내지는 참담하거나 절망적인 과업 하나쯤은 짓고 살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 질문은 생략했다. 꾸준함을 강조하던 스승의 가르침에는 긴 공백 기간이 오점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분출하는 에너지와 기질에서 거부할 수 없는 예술가적인 DNA가 엿보인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다. 화가 이동재는 ‘개’그림을 통해서 그것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에게 ‘개’는 숨겨진 자아와의 접촉대상이다. 다양한 삶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개체이며 삶의 목표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인류애로 가득한 내면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동재에게 개는 약자의 대변체이다. 그의 그림이 고루하거나 낡은 전통화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현형식의 진부함이 아닌 작가의 관심사에 주목할 때 우리는 화가가 녹여낸 시각의 차별화에 동참할 수 있다.

이동재의 목표는 ‘개’를 재현하거나 개를 통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동재에게 개는 삶의 이유가 됐을 만큼 사유를 자극하는 그리움의 요체이다. 개는 그에게 다시 붓을 잡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화가는 삶에 활기를 제공하는 에너지의 원천인 개를 그리면서 영육(靈肉)의 치유(治癒)를 경험하는 중이다. 유기견과의 만남이 첫 출발점이다. 유기견이 불러일으킨 연민은 세욕을 내려놓게 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눈 돌리게 했고 긍정적인 삶으로 이끌었다. 눈을 돌렸다는 것은 마음을 두었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연결이 복잡할수록 바쁜 삶은 더 바쁘다. 바쁠 때 공상은 우리 안에 감추어진 경이로운 것을 보게 하는 통로가 된다. 바쁜 세상의 요구에 발맞추다보면 신경 쓸 겨를 없이 간과하는 상상도 정신의 폭을 넓혀준다. 바로 예술의 순기능이다. 예술은 호기심으로부터 자기성찰로 연결되기도 한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관심에 열려있다. 그러나 여러 양상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대미술의 개념을 정의하라면 막연하다. 당대에 생산된 매체의 사용이 현대미술을 결정짓는 기준점은 아니다. 그보다 르네상스 이래 가꾸어온 전통적인 표현방식의 거부를 기준점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화의 개방 영역도 확장됐다. 영상매체나 컴퓨터그림은 당대 미술의 첨병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컴퓨터그림이 판을 치는 현대에도 전통적인 캔버스 회화는 꾸준히 그 맥을 유지한다. 캔버스 회화하면 떠오르는 것이 유화물감이다. 1950년대에 등장한 아크릴물감은 유화물감보다 후발주자다. 디지털매체에 비하면 오십 보 백 보지만 아크릴물감은 유화물감보다 건조가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숙련된 화가들은 색채가 밝고 불투명하면서도 쉽게 색이 바래지 않는 아크릴 물감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다. 화가 이동재도 이 부류에 속한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의 그림은 담백하다. 스토리를 짜는 시간보다 그리는 시간이 빠른 그의 화가로서의 신념과 잠재력,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면에 포진한 울트라마린색이 싱그러운 여름을 추억하게 한다. 2019년 봄부터 이동재의 푸른 화면에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붉은 낯빛을 한 여인이 소파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한다. 무엇을 보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얼핏 보면 이 여인(사람)이 주인공 같지만 우리는 곧 그가 엑스트라임을 것을 알게 된다. 이동재의 그림에서 사람은 화면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조형요소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개’다. 보편을 벗어난 화가의 설정이 사람을 통해서 전해진다. 화가는 어김없이 인물 곁에 개를 배치한다.

한 여인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다. 취한 자세로 보아 휴식 중 인 듯하다. 그 곁에서 쉬고 있는 반려견의 자세도 평화롭다. 시선의 방향은 서로 다르다. 개는 여인이 여행과 산책을 나설 때 함께 길을 걷는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밀착관계임을 아는 우리는 주인에게 길들여진 애완동물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림에서 역발상은 흥미를 두 배로 부풀린다. 이동재 작가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동재는 그의 그림에서 상식 비틀기를 시도한다. 하여 우리가 선입관을 가지고 선 이해를 하면 곤란하다. 개가 나서는 여행과 산책에 사람이 동행을 한다. 개가 휴식을 취하면 사람도 함께 쉰다. 주객이 전도됐다. 비틀기, 돌려보기, 거꾸로 보기 등, 이동재의 그림보기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할 것 같다. 작가는 우리에게 고정관념을 깨고 현실 틀어보기를 하라고 하는 것 같다. 소설로 치면 옴니버스식 구성에 가깝다.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인물과 배경은 같은데 일어나는 사건이 각기 다르다면, 옴니버스식 구성은 일어나는 사건뿐만이 아니라 인물과 배경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데 묶는다. 이동재의 그림도 이러한 방식이다. 이때 작가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작가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관람자들에게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형식이다. 1인칭 관찰자인 동시에 서술자가 된 화가는 관람자들에게도 넌지시 자기처럼 해보라고 하는 것 같다.

풍속화는 세상에 대한 감각적인 체험을 주로 담는다. 화가 이동재도 감각을 통해 세상을 체험하고 그것을 자신의 그림에 반영한다. 환경운동가에 비견되는 이동재는 그림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 그가 화면에 ‘개’를 사람과 수평관계에 위치시켜놓고 가치 있는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유이다. 긴 공백기를 깨고 다시 돌아온 만큼, 다양하고 견고해질 이동재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서영옥ㆍ미술학 박사 shunna95@naver.com

이동재작가
 
※ 이동재=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0회의 개인전과 80여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현재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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