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힘, 정의로운가
광장의 힘, 정의로운가
  • 승인 2019.10.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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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는 이 구절은 4·19혁명 이듬해인 1961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서문이다. 1950년에 월남할 때 고교생이었던 작가는 1945년에서 1950년까지 북한에서 생활과 4·19혁명으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를 경험했기에 이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명준은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이유로 경찰서에 드나들면서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 남한의 밀실에 환멸을 느끼고 월북하지만 북한 역시 '진정한 광장은 없고 공허한 구호'만이 있을 뿐 인간적 소통과 정의로운 삶은 없었다. 그래서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인 인도로 가는 도중 배 위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은 분단과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을 그리면서 북쪽의 사회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고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放逸)한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국가라는 외부의 칭송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면서, 점진적으로 광장 정치에서 벗어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습득하여왔다. 안타깝게도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검찰개혁 촛불집회'가 개최되면서 2016년 '국정농단 규탄집회' 이후 광장의 정치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조국과 그 가족의 탈법 의혹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 투쟁으로 수세에 몰렸던 정부여당이 촛불집회라는 광장 정치를 통해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부각하면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촛불집회 후 문 대통령은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관행, 조직문화에 개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모든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며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에서 촛불집회를 거론하며 "과잉 수사를 일삼는 검찰, 그리고 이를 정쟁의 소재로만 삼는 일부 야당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면서" 검찰은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개혁에 동참할 마지막 기회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조국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놓고 일각에서 이른바 '윤석열 책임론'이 제기되는데 대해 "지금 단계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애둘러 표현했다.

서초동 촛불집회를 보는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촛불집회를 "친문 세력이 조국과 이 정권이 저지른 불의와 불공정에는 눈을 감고 도리어 검찰을 겁박했다"면서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 대한민국에서 인민재판을 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적폐 청산의 책임자로 내세운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권의 적폐를 들춰내자 마치 소금 맞은 미꾸라지마냥 발악하고 있다"며 "정권이 문 대통령의 홍위병을 앞세워 사법체제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집단을 구성해 위협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검찰개혁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검찰 개악'"이라고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제35회 이북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개회사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화합하며 대한민국의 역동적 발전을 이끌어왔고 저도 이러한 경쟁속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며 민주주의의 힘을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사회적 갈등과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 과정에서 다수결 투표, 여론조사 수치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심사숙고하여 토론하고 회의하는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적이 있다.

역사적 경험을 미루어볼 때 밀실이던, 광장이던 소통이 단절되면 전체주의로 갈 확률이 높다. 한때 광장이 민주화 운동의 심장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힘을 가진 정부여당이 인내하지 못하고 광장 정치에 의존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온 나라가 조국 사태가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고 있다. 민생, 외교, 경제 등 현안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 조국을 놓아주자. 비록 그가 검찰개혁의 최적격자이고 살아있는 권력이라 해도 법을 위반한 순간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폭력을 광장의 힘으로 지킨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토사구팽'이냐 '헌법의 수호자'냐 기로에 선 검찰의 운명도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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