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홍의 붉게 타오르는 태양에 희망이 고동친다
남홍의 붉게 타오르는 태양에 희망이 고동친다
  • 황인옥
  • 승인 2019.10.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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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남홍 초대전
‘해·나무·나비’ 등 자연물 소재
힘찬 희망·행복한 오늘 은유
회화·콜라주 등 50여 점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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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화가 남홍의 ‘솟는 해, 알 품은 나무’전이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홍 작가.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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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홍 작 ‘찬란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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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홍 작 ‘삶은 아름다워’.

작가 남홍에게 붉은 색은 특별했다. 그녀 자신이었다. 붉은색과 함께라면 그 어떤 외로움도 비껴갈 것 같았다. 그래서 평생 작열하는 태양의 분신인 붉은색에 스스로를 오버랩했다. 붉은색은 프랑스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작가를 영적으로 인도해 준 희망찬가였다. 최근 시작한 대구미술관 전시장이 붉은색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7살 때 내가 살던 봉산동 건들바위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웠던 일출을 평생 잊을 수 없었어요. 태양이 떠오르며 토해내던 그 장엄한 붉은색에서 희망을 보았었죠. 그 희망의 기운이 평생 저를 따라다녔어요.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남홍 초대전이 대구미술관에서 최근 개막했다. 전시는 대구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지역 작가를 조명·연구하는 대구미술관 기획전의 일환이다. 전시에는 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회화 시리즈, 콜라주, 설치 등 50여점의 작품을 모았다. 남 작가 작업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것.

이번 전시 제목은 ‘솟는 해, 알 품은 나무’이며 ‘해’, ‘나무’, ‘산’, ‘나비’, ‘봄’이라는 다섯 가지 소주제로 펼쳤다. ‘해’는 희망이자 행복한 오늘에 대한 기원, ‘나비’와 ‘봄’은 따뜻한 지복(至福), ‘알 품은 나무’는 희망의 염원에 해당된다.

“모든 삶이 힘들지만 그들 모두 다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마음가짐에 따라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죠. 문제는 희망에 대한 믿음이겠죠.”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어도 희망을 간직하는 한 마음은 봄일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남 작가가 그토록 간절하게 희망을 외쳐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터뷰 내내 작가가 “내 삶에는 희망의 기운이 넘쳤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른다”고 되뇌일수록 오히려 의문은 커져갔다. 강한 긍정이 부정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작가가 할머니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사를 가르는 이별이 작가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던 것.

하지만 그녀는 슬픔을 슬픔에서 끝내지 않았다. 작품 속으로 끌어와 희망으로 승화했다. “할머니와 언니를 묻고 산소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산이 보였어요.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산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됐어요.”

대구출신의 남홍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2년 전 대구로 귀향했다. 작가는 국내보다 프랑스에서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뒤 1982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8대학 조형미술과에 진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 미술대학 대신 불문학을 전공한 이유는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기가 생활이어서 굳이 전공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문학에 빠져 살던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불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달랐다. 순전히 떠밀려(?)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그림을 계속 그렸고,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화로 살롱전에 출품해 여러 차례 입상하자 주위에서 미술대학 진학을 권유했어요.” 미대에 진학해서도 그녀의 미술적 자질은 단연코 돋보였다. 프랑스에서의 이 같은 행보는 따지고 보면 남다른 유전자와 관련됐다. 그녀의 오빠가 오리 그림으로 유명한 이강소 화백이다. 언니 이강자(작고)와 이현주도 화가와 조각가로 이름을 알렸다.

붉은 캔버스가 흡사 무당의 굿판을 닮아있다. 흡사 토해낸 점사(占辭)와도 같다. 작열하는 붉은 계열의 색채와 다양한 콜라주, 두터운 질감들에서 질펀한 감정선들이 춤을 추고 있다. 작가가 “그리움을 그렸다”고 했다. “정월 대보름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촛불에 태우며 자손들의 이름을 정성스레 부르던 할머니와의 추억과 어린 시절 건들바위에 떠오르던 일출의 기억, 할머니와 언니의 무덤에서 새롭게 만난 산의 모습들이 작품의 근간이 됐어요.”

‘불과 재의 시인’으로 불리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남홍. 귀향 후 대구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된 소감으로 "꿈만 같다”고 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새로운 예술세계로 나아가고 싶어요.” 작가는 대구로의 귀향이 곧 '둥지'에 돌아온 느낌이라며 향후 '둥지’ 연작에 매진하게 될 것을 언급했다. “비슬산과 팔공산이 있는 내 둥지인 대구에 왔으니 작품도 변해야죠. 고향에서라면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시는 2020년 1월 5일 4, 5전시실에서. 053-803-79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남홍은 2015년에 할머니가 행했던 의식을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오프닝 퍼포먼스로 선보이며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문화협회 황금 캔버스상, 플로랑스 비엔날레 대통령 특별상을 수상하며 상복도 터졌다. 또한 프랑스 국유의 오베르성 초대전, 한·불 수교 120주년과 130주년 파리 16구청 초대전, 이탈리아 루카 미술관 초대전, 모나코 초대전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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