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0월, 그날의 기억
어느 10월, 그날의 기억
  • 승인 2019.10.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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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역사란 무엇인가? 카(E, H. Carr)는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에 반발하여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되지 않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큰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카는 역사가의 역할을 과거의 사실을 현재에 입각하여 의미있게 재구성하는 것이라 하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역사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 첫째는 시간상 경과를 말하는 경우고, 둘째는 그것을 사람이 이해하고 기술한 것을 말하는 경우다. 동양에서는 대체적으로 역(歷)이 첫째의 뜻을 말하고 사(史)가 둘째의 뜻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축조한 유명한 건축물 중 장구한 시간으로 겪은 건축물은 참으로 역사적인 유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다고 하여 모두가 역사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인간에게 관계된 어떤 사건이라야 한다.

역사적 인식은 자체의 근본적인 것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적 판단이다. 역사라고 함은 모두가 근원에 대한 자각이고 또 그의 해명이다. 그 실재가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이것은 또 기록에 의하여 더욱 선명히 자각된다. 자각할 수 있는 실재가 없는 곳에 역사는 인식되지 않는다. 경과로서의 역사와 기술로서의 역사는 자각할 수 없는 역사 그 자체의 필연적인 이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의 임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일일이 도덕적 해석을 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고, 그 사실들에 의하여 구성되는 각각 그 시대의 상황이나 이념을 인식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그리고 잊어서 안되는 것은 역사상의 각 시대는 독자적인 과제가 있고, 가치기준이 있어서 그것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우세의 기준을 가지고 간단히 과거 사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역사는 인류의 진보·발전이 과정으로서 파악할 수도 있고, 역사는 인간생활의 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라 함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고귀하기도 하며 비천하기도 하고, 세련되어 있기도 하며, 영원을 향해 있는 것과 동시에 순간에 속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역사는 한없이 우행과 악업이 반복되어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단히 공평, 공정, 정의로운 것에 대해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오는날 10월은 축제의 계절이라 할 정도로 풍성한 축제가 주민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제공하고 있지만 1979년 10월은 역사적으로 폭풍우 속으로 빠져든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8년 12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그 당시 여당인 공화당은 야당인 신민당에게 의석수는 앞섰으나 지지율에서 패배했다. 1979년 8월에 YH무역주식회사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점거 농성, 9월부터는 전국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확대됐다. 특히 야당 총재인 김영삼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처분을 받고 감금한 것에 대한 반발이 부마항쟁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10·26, 12·12, 5·18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성장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0·26에 대한 기억은 다른 형태로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부마항쟁으로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라 학교에 출입할 수가 없어 서울서 내려온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영화를 관람하곤 했다. 그 날 관람한 영화 페세이지(The Passage)는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영화다. 1979년 제작된 그리고 안소니 퀸이 주인공으로 이 영화의 내용은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탈출하려는 미국인 과학자 존 버거슨 일가를 도와주려는 바스크족 양치기의 영웅담을 그린 영화다.

시간적으로는 1979년 10월 26일 초저녁이었던 것 같다. 친위대 대위 폰 베르코보가 주민을 묶은 후 휘발유를 붓고 담배불을 던지는 장면도 충격적이었지만, 의미심장한 것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울렸던 총소리이다. 그 소총 소리로 인해 눈사태가 일어나는 장면보다는 유난히 크게 들린 그 총 소리였다. 총소리의 여운은 밤새 잠을 뒤척이게 했고, 이른 아침 뉴스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박 대통령께서 ‘유고’라고 특별방송을 했다.

부마항쟁도 그렇고 곧 다가올 10·26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오래된 기억일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도 역사 논쟁이나 이념 논쟁이 진행 중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떤 시각을 가지고 역사를 보는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끊없는 대화’라고 인용하면서 역사 왜곡을 천연덕스럽게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할 때가 많다. 따라서 기억을 되새겨 보면서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역사왜곡에 한몫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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