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서 받은 영감, 추상화로 풀었다”…대백갤러리 B관 최우식 개인전
“유적지서 받은 영감, 추상화로 풀었다”…대백갤러리 B관 최우식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19.10.2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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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과 감정 활용 재해석
불상 등 종교 표상 오브제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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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 작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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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 작 ‘상’

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역사이자 한 시대의 기록이다. 개인이 곧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가 개인들의 총합이기 때문. 그러나 작가 최우식은 시대의 개념을 좀 더 넓게 확장한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까지 당대의 기록으로 끌어들인다. 더 엄밀하게는 역사 속 면면히 이어온 정신을 당대 최우식의 혼(魂)과 버무리며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간다. 그는 오래된 절터나 불상 등에 얽힌 사연을 자신의 감성으로 재해석한다.

“역사적인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근거로 실제 제가 그 장소에 가서 기운을 느끼고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어요.”

운창 최우식의 개인전이 열리는 대백프라자갤러리 B관 전시장을 추상이 점령한다. 절터, 불상 등 답사스케치 기행에서 영감을 받아 추상으로 녹여낸 한국화 30여점이 전시장에 걸린다. 그 중에는 공단 외곽 지역의 거친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초기 화풍의 작품도 2~3점도 포함된다.

작업 초기의 주된 작품 경향은 사실적인 풍경이었다. 특히 공단 외곽지의 거친 풍경을 건조하게 표현했다. 당시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를 예술의 소재로 활용했다. 남다르게 치열했던 작가의 20~30대를 거친 표현법으로 표현한 것. 작가의 20대는 치열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다. 부친의 뜻을 거스르고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그의 고난이 시작됐다. 아들이 공대에 진학해 산업화가 한창이던 한국 경제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꺾은 최 작가가 자신의 꿈을 향해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학비는 본인의 몫이 됐다.

당시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주독야경(晝讀夜耕)했다. 낮에는 미대 학생, 밤에는 공단 근로자라는 이중생활에 돌입한 것. 낮에는 미술대학 학생이었지만 밤에는 거칠고 투박한 근로자의 삶을 살아야 했고, 그런 삶은 작품의 소재가 됐다. 먹과 나무를 깎아 만든 날카로운 도구로 공단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러나 누가 봐도 거친 삶을 느낄 만큼 투박한 터치로 표현했다. “그때 잠을 2시간 밖에 못자는 상황이었지만 꿈이 있어 힘든 줄 모르고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었죠.”

작품의 흐름은 작가 개인의 삶의 변천사와 일치했다. 주독야경의 20대를 지나고 예원예술대학에 몸담아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삶이 안정권에 접어들자 작업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거친 터치의 사실적인 화풍에서 종교적인 성찰이 묻어나는 추상으로 변화한 것.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탐구의 대상이 바뀐 것. 삶의 문제에서 정신의 문제로 넘어온 것. 15년전부터 사찰이나 사찰 터에 답사 여행을 다닌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투병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간절한 기도가 필요했던 시기에 사찰을 다니며 기도를 올렸고, 그 기운들이 일필휘지로 드러났다.

“고찰이나 유적지의 풍경을 직접 표현하기보다 제가 느낀 기운을 추상으로 풀어놓고 있어요. 최근에는 불상을 오브제로 평면에 올리기도 해요.” 이른바 형상 이면의 형상에 집중한다는 이야기였다.

그에게는 잊히지 않는 삽화 하나가 있다. 술을 좋아했던 부친이 이발소에 가면 어린 최우식을 데려가곤 했는데, 부친은 이발사와 함께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이발을 하곤 했다. 그때 최우식은 술에 취한 이발사가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에서 공포를 느꼈다. 그 상황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밀레의 만종이었다. 밀레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그의 그림을 보며 공포를 잊곤 했다. “지금까지도 그림을 그릴 때 대각선을 잡고 배경에 수평 수직으로 완성하는 구도를 고집하는 것은 그때 보았던 밀레의 만종의 영향이 컸어요.”

그림에 대한 재능은 초등학교 때 이미 검증 받았다. 삼성생명실기대회의 전신인 동방생명실기대회에 울산 대표로 참가해 최고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포경선 위에서 바라본 작살에 맞아 피를 튀기며 바다 위를 뛰어오르던 고래를 그렸다. 그 장면이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강렬해서 어린 나이였지만 기운 생동하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향후 고래를 소재로 한 그림에도 집중해 볼 계획이다.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은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작가는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역경마저 그림으로 승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작가는 동료·선·후배 작가들을 위한 활동에도 열심이다. 다양한 단체를 통해 작가들을 돕는 한편 자신의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작가들의 작품 2천여점도 샀다. “제가 청년시절 어렵게 미술을 이어왔기에 청년작가나 선배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것 같아요.” 전시는 22일부터 27일까지. 053-420-801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최우식은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을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세계청년비엔날레 조직위원장,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초대조직위원장,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동문회장, 존경하는 선배모시기 운동본부 회장 등을 맡아 선후배 작가들 지원에 나섰다. 올해는 2019김해국제비엔날레예술감독을 맡았다. 현재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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