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습판사진술로 만든 우연…풀꽃갤러리 아소, 이진영 사진전
100여년 전 습판사진술로 만든 우연…풀꽃갤러리 아소, 이진영 사진전
  • 황인옥
  • 승인 2019.10.24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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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필름 활용한 희귀한 작업
회화? 사진?…모호한 분위기
ASO_운화몽_jinyounglee_Portrait
작가 이진영이 풀꽃갤러리 아소에 전시된 작품 '운화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추억의 영화를 보다 보면 필름을 끼운 후 암막 천을 뒤집어쓰고 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을 가끔 보게 된다. 디지털 세대일 경우 컷 마다 네모 상자같은 큰 필름을 갈아 끼우는 과거의 쵤영 방식에 눈을 떼지 못할 수도 있다. 보는 순간 느리고 불편하다는 탄식과 따스한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탄성이 교차한다. 그런데 놀라기에 아직 이르다. 필름이 유리라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듣고 나면 “이거 실화?”라며 순간 확장되는 동공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유리 필름은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엄연히 사용한 장치다. 작가 이진영 사진의 매력도 바로 이 유리필름으로부터 촉발하고 있다.

작가가 유학하던 시기의 독일은 개념미술이 점령했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대체되는 일대 전환기였다. 그럼에도 대학에서는 새로운 디지털 방식 못지않게 다양한 아날로그 방식에 대한 실험들을 경험하게 했다. 작가는 독일에서 아날로그적인 다양한 기술들을 습득하면서 새삼 아날로그의 감성에 매료돼 갔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아날로그 방식인 유리필름 작업은 독일 유학 시기의 경험들 속에서 나온 것 같아요.”

작가가 사용하는 매체는 옛 습판사진술(Wet Collodion Process)의 하나인 암브로타입(Ambrotype). 이 타입은 콜로디온 유제를 유리판에 바르고 노출 직전에 질산은 용액으로 빛을 흡수해 그 에너지를 원하는 반응물에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을 사용해 반응을 유도하는 과정인 감광성을 주어 음화(사진을 찍었을 때 사물의 명암이 반대로 재생된 화상)를 얻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기법이다. 장노출을 하고 감광제가 마르기 전에 암실에서 현상해야 한다.

암브로타입은 “암브로타입이 지닌 액체와 유리의 물질성이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인 물의 질료성과 잘 결합되리란 믿음”으로 선택된 방식이다. “젖은 점액질이 마르면서 비로소 투명해지는 콜로디언(Collodion)이라는 화학물의 성격이 지구의 모든 생명이 실제로 젖은 생명(Wet Life)인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촬영 내내 젖은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암브로타입이 마치 생명이 체온을 지키듯 습기를 내내 보존해야 하는 상황과 동일하게 인식된 것.

100여 년 전의 방식인 만큼 재료 구하기와 기술 습득이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에는 오히려 이같은 난관이야말로 창작열을 끌어올리는 추동력이 된다. 스스로 재료를 찾아 만들고 기술적인 부분을 해소해 가는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긴다. 작업 과정을 스스로 제어하는 방식은 이진영 사진의 핵심 가치다. 그녀에게 이 과정은 사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행위로 인식된다. 유리와 필름판 제작부터 화학약품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컨트롤하는 현재의 작업방식은 그 연장선에 있다. “매체의 통제는 완벽한 제 사진을 위한 전제조건 중 하나죠.”

첫 피사체는 인물이었다. 당시는 “찍는 자체가 중요”했다. 유리 네거티브 원판에 맺혀 건조된 상태의 잠재적 이미지 뒤에 어두운 벨벳 천을 대면 반전현상이 일어나 포지티브 이미지가 드러나는 그 상황을 즐겼다. 유리판에 맺히는 이미지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것. 그러다 암브로타입에 대한 완벽한 제어가 가능해지자 형상적인 욕구가 분출했다. 우연히 비행기에서 보았던 아련하고도 몽환 가득한 구름형상을 본 후 구름을 찍기 시작했고, 드라이 플라워 같은 식물들로 확장했다. 작업방식이나 피사체 그리고 인화과정의 불완전한 요소들로 인해 결과치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지점에 놓인다.

“투명 유리필름, 한지인화지, 겹침이 만나면서 몽환적인 형상으로 귀결되고, 한지인화지와 바람 빛 등의 주변 상황들이 만드는 우연적인 요소들은 이를 강화해 줍니다.”

불완전함의 끝판왕이다. 불완전한 상황으로 출발해 불완전한 형상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현재로부터 괴리된 시간적인 단절로 인한 재료와 기술의 단절이 주는 불완전성이 관건이다. 막상 이 문제를 완벽하게 극복했다 해도 인화 과정에서 100년 전에 도출된 한계점은 어쩔 것인가? 그러나 작가에게는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다. 연금술사와도 같은 내공으로 수많은 불안전한 상황들을 해소하며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온전히 제가 스스로 만들고 보고 얻은 감각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어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의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작가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특히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온고지신(溫故之新)을 선호한다. 옛것에 대한 애착은 독일에서 귀국하면서 새롭게 눈뜬 가치다. 인화지로 한지를 선호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한옥에서 전시를 하고, 고가구를 소품으로 활용하는 배경에 옛것에 대한 애착이 자리하죠,”

최근 전시를 시작한 풀꽃갤러리 아소 전시장이 아카이브 공간처럼 꾸며졌다. 암브로타입을 토대로 한 작업의 전 과정을 작품으로 모았기 때문. 네거티브 유리필름과 포지티브 이미지, 현상·인화한 암브로타입의 작업 2~3장을 겹쳐 완성한 유리원판작품, 6~7장을 두께가 서로 다른 아크릴 판 사이에 끼워 길게 만든 사진설치 등 다양하다. 전시는 11월 2일까지. 관람료 5,000원. 010-4217-448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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