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꽃, 나도 꽃
너도 꽃, 나도 꽃
  • 승인 2019.11.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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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11월이 시작되면서 아침, 저녁 찬 바람 때문일까, 이제는 가을 이라기보다는 겨울이 더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거실 창 커튼을 젖히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마당을 둘러본다. 밤사이 우리 집 마당을 지켜준 달자와 마당 한쪽 닭장 속의 닭들의 수를 세어본다. ‘하나, 두울, 셋, 넷, 다섯, 여섯…’ 이렇듯 나의 하루는 베란다 커튼을 젖히고, 마당에 있는 동물들이 밤새 잘 있었나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이 된다.

한 여름 그렇게 푸르렀던 감나무의 잎사귀도 거의 모두 떨어져 알몸이 되어버렸고,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겨울을 향해 달려가면서 마당 담벼락 밑 화단에도 녹색 빛은 줄어들고 갈색 빛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풍경 중에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빛깔이 하나 보인다. 분홍빛이다. 가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빛이었다. 자세히 보니 꽃이었다. 갈색의 잎들과 잿빛 시멘트 벽 사이로 연분홍빛 작은 생명이 인사를 해온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슬리퍼를 끌고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봄에 피던 예쁜 꽃 그 녀석이다.

마당 식물들이 갈색을 띠며 잎들을 내려놓는데 이 녀석 혼자 까만 밤 동안 어여쁜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 든 생각은 이랬다. “이놈아 찬 서리 내리는 11월에 무슨 꽃이냐 얼어 죽으려고 그러냐” 그 생각이 나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서, 미안함이 밀려왔다. 있는 그대로의 그 모습을 바라봐 주지 못하고 그 꽃을 보고 내 맘대로 왜 지금이냐? 말해버렸던 것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내 눈으로 그를 보았다는 것과 나의 경험과 내가 쓴 안경으로 그를 판단했다는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건, 꽃이 폈을 때다.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고 그냥 그 꽃이 예쁘게 활짝 폈을 때다. 자연스러운 것은 모두 아름답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다. 인위적이고, 힘이 더해져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다. 그래서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가진 기준의 틀에서 사람들을 평가 내리고, 상황들을 판단하고 평가 내린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 틀리다 라고 얘기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맞고, 틀리고의 기준은 사람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늘 비틀어 버린다. 그리고 그 행위는 늘 정당화된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늘 미움과 미움의 싸움이라 본인은 생각한다. 죽음 앞에 무슨 정당성이 보장되는가? 그쪽이 보면 우리가 죽을 사람이고, 우리가 보면 그쪽이 죽을 대상인 것을.

우리는 늘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으니 그 틀림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의의 사도 역할을 자처한다. 신(神)도 심판을 쉽게 하지 않는다. 미루고 미루면서 우리 인간들을 지켜본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너무 곧 잘 심판을 한다. 정말 위험한 사실은 늘 상대는 악(惡)이고 자신은 선(善)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는데 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꽃은 언제나 아름답다”라는 사실이다. 봄에 활짝 핀 벚꽃도, 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꽃도, 길가 도로가에 먹음직스럽게 핀 이팝나무 꽃도 모두 꽃이다. 가을 들녘에 핀 코스모스도 꽃이고, 그리고 겨울에 철모르고 피는 꽃도 꽃이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한 겨울에 핀 성질 급한 개나리도 꽃이다. 서로 마주 보며 얘기하며 활짝 웃는 웃음도 꽃이고, 내 맘속에 늘 피어나는 그리움도 꽃이다. 그래 모두 꽃이다.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다.

모두 자기만의 자기 시간이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때에, 각자의 자리에서 꽃으로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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