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경험
환자 경험
  • 승인 2019.11.24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준우
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
든든한 병원 원장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스키장의 하얀 눈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스키장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올해 초 1월에 아들과 함께 찾은 스키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무릎에 골절을 입은 것이다.

정형의과 의사인 나도 다치자마자 바로는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일어나려고 했으나 통증이 심해 걸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줘서 패트롤을 타고 의무실까지 내려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항상 의사의 입장에서 다친 환자들을 치료하긴 했지만 막상 내가 다치고 나니 앞이 캄캄했다.

제발 많이 다친 게 아니길 빌며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오면서 점점 부어오르는 무릎을 보니 착찹한 심정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가서 MRI 와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경골 함몰 골절이었다. 당장 다음날 수술 예약을 잡은 환자들 걱정과 한동안 진료를 못 볼 생각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병실에 가서 누워 있으니 잠도 잘 오지 않고 매일 내가 하는 수술이지만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니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 응급수술을 동료에게 받았다.

병실에서 수술실로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동안 내가 지금까지 수술한 그 많은 환자들도 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수술실로 이동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인 내가 이런데 환자들은 얼마나 두렵고 떨릴까? 마취를 하고 수술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벌써 병실인데 수술이 마치고 병실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시작되고 무통기를 아무리 눌러도 통증이 호전이 잘 되지 않았다.

밤새 간호하느라 지친 와이프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통증으로 인해 한 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잔거 같았다.

짜증도 나고 왜 다쳤을까 후회도 되고, 아프기도 하고. 매일 하는 수술에 환자들에게 첫날은 아프실 거라고 너무나 쉽게 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얼마나 많이 아프셨을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니 통증은 많이 호전됐으나 휠체어를 타고 거동이 제한이 되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화장실 한번 가기도 너무 힘들었고, 침대에 계속 누워있는 것도 힘들었고, 밥을 한 번 먹는 것도 큰일이었다.

보조기를 차고 잠을 자는 것도 편하지 않았으며 목발도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 한 적이 있었다.

2주간 입원을 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나았다. 병원이라는 곳이 그래도 휠체어 타기도 편하고 아프면 바로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집으로 가니 목발 짚는 것도 훨씬 힘들고 차에서 내리거나 탈 때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 모든 일들을 나의 환자들이 겪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자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게 뭐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목발을 잘 짚는 방법을 내가 직접 동영상으로 찍어서 알려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직원들과 아이디어를 짜서 영상 제작을 하게 되었다.

요즘 환자 경험 디자인이라는 트렌드가 있다. 직접 환자의 마음에서 경험을 해보고 서비스를 한다는 것인데, 아마 나보다도 더 환자 경험을 제대로 한 의사는 잘 없을 것이다.

정말 환자가 되어보니 의사의 입장에서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전등 끄는 걸 더 편하게 하실 수는 없는지, 화장실 문턱이 조금만 높아도 휠체어가 지나가기 힘든데 더 편하게 해드릴 수는 없는지, 목발을 짚다가 넘어지시면 더 많이 다치실 수도 있는데 제대로 목발을 짚도록 교육할 방법이 없는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 사시는 분은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막상 환자가 되어보면 불편한 게 너무 많아서 그동안 나의 수많은 환자들에게 너무도 쉽게 이래저래 말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벌써 다리를 다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오래 걸으면 무릎이 가끔 시큰거리기도 하고 재활을 받는 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지만 나에게 찾아오시는 많은 환자분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환자 경험은 다시 하기는 싫은 일이긴 하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진료를 보려한다.

“어무이, 제가 한번 다쳐봐서 아는데요. 많이 힘드시죠? 목발 짚는 거 힘드시면 제가 만든 영상 요고 한번 보시고 조심해서 짚으세요. 항상 건강하세요”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