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의 정열
허망의 정열
  • 승인 2019.11.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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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안보 불감 증세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북한군이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지시로 우리 남쪽을 향해 해안포 사격을 또 실시했는데도 정부에선 별 반응이 없다. 국방부가 해안포 사격 당일보다 하루 이틀 늦게 마지못한 듯 북한에 유감을 표시 한 뒤, 그 이튿날인 26일에야 군 통신선을 이용해 북한에 항의하겠다고 발표한 것 정도가 이 정부가 보인 반응의 전부다. 9년 전 연평도 포격 도발 시점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해안포 사격에 나선 북한의 이 행위는 지난해 체결된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우리 정부가 이 합의의 최대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적대행위 금지 구역, 소위 ‘완충 구역’ 내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는 명백히 이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가장 큰 치적으로 내세우며 이 군사합의를 맨 앞에 내세워 치적을 홍보해 왔던 정부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 해안포가 몇 발이나 발사됐는지, 발사는 정확히 언제 했는지, 발사 방향은 어디였는지 등등에 대해 일체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이젠 일상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도 “북한이 또 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데다 심지어는 북한이 남북군사합의를 정확히 어기고 완충지역에서 해안포를 발사한 사실을 모르는 이도 즐비하다. 이러니 남쪽의 안보불감증은 이미 병세가 수위를 넘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언젠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풍선을 보고 울음 우는 한 소년을 본 적이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어릴 적에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적이 있다. 어느 시인의 시구인지, 아니면 그 당시 떠돌아다니던 노랫말이었는지, 누가 한 말인지, 그런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창 시절 곰곰이 곱씹어 보던 글귀라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작은 소년이 자신의 꿈처럼 환하게 부푼 풍선을 보면서 큰 희망에 사로잡혔지만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간 풍선은 태양과 가까워지면서 결국은 터지고야 말 것이고, 이를 지켜보는 소년은 곧 울음을 운다는 ‘허망의 정열’에 대한 글귀였다. 남북군사합의니 한반도의 평화가 허망의 정열이 될 수도 있지않겠나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마치 풍선을 보고 울음을 우는 소년 같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안보에 무기력한 지금의 정부가 펴는 정책이 미심쩍게 다가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미심쩍은 부문이 어디 그것뿐인가.

‘고용장려금이 바닥났다’는 뉴스가 온통 춤을 춘다. 중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세금으로 지원하는 일자리 안정자금의 올해 예산 수 조원이 열 달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식이다.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한 명 당 정부가 사업자에게 급여 일부를 세금으로 지급하는 제도가 일자리 안정자금인데, 올해 신청이 폭증하면서 세금을 더 투입하게 된 것이다. 일자리 사정이 더욱 악화일로라는 진단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경기부양책은 효험을 못 내고 있고, 그래서 애꿎은 세금만 터진 둑 메우듯 자꾸 쏟아부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정부 관련부처에서는 ‘정부가 최저임금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열심히 홍보한 결과 이 자금이 모자라는 지경’이라고 희안한 해석을 하고 있으니 이 역시 소가 웃을 일이 되고 있다.

그뿐인가. 부동산 정책은 각종 정책에도 여전히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지만 얼마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장담했다. 일자리 정부를 공언하더니 단기적인 비정규직이 이 정부에서 가장 많이 양산됐고 제조업이나 30~50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일자리정책은 성공적이라는 정부의 자평이다. 지난 2년 내내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좋아질 것이라고 ‘임기 하반기 성과’를 외쳤지만 임기 반환점을 돌고도 여전히 경제성장률은 저점에서 비몽사몽을 연출하고만 있다. 소득주도성장, 주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등등을 줄기차게 밀어붙인 결과다. 그래도 이 정부는 나라의 경제를 확신하는 이상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2년 반 동안 무슨 개혁이 있었나. 복지를 부르짖으면서 재정만 쏟아 붓는 게 무슨 개혁인가.

안보도 ‘풍선’이고, 경제정책도 곧 날아올라 터질 ‘풍선’을 보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작금의 정치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파싸움에만 몰입 중이어서 나라의 대들보가 무너지는 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

정치는 경제보다 우선한다.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 규칙과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나라의 경제가 잘 돌아가는 방향을 최우선으로 지향해야 한다. 그런 정치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움켜쥐는 정치다. 국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선 같은 한반도 평화만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이 ‘허망의 정열’이라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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