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제미니 맨’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백정우의 줌인아웃] ‘제미니 맨’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 백정우
  • 승인 2019.11.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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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미니 맨’ 스틸컷.

미정보국 소속 최고의 킬러 헨리. 은퇴한지 얼마 후 자신과 똑같은 녀석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다. 물고물리는 추격전 끝에 헨리는 녀석이 25년 전 자기 DNA를 복제해 만든 클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클론을 죽일지 복제인간을 만든 자들에게 복수할지 기로에 놓였다. 이안 감독이 만든 ‘제미니 맨’이다.

복제인간을 만든 클레이는 말한다. “이 녀석들이 있으면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고 슬픔에 빠지는 부모가 없을 거”라고. 그의 꿈은 클론으로 군대를 조직하는 것. 인간 대신 클론이 전쟁을 치르고 전장에서 죽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감독은 시작부터, 복제인간은 인간인가? 라는 원론적 질문을 던진다. 원본과 똑같이 복제된 클론일지라도 특급 살상무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성장과 교육과 훈련을 거치기 마련. 헨리를 복제한 주니어가 그렇듯 복제인간에도 ‘마음’과 ‘양심’이 있다면 그들의 죽음을 한낱 소모품의 망실로 보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영화 ‘아일랜드’가 병들고 손상된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자기의 복제인간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야기되는 인간 존엄과 생명윤리를 지적했다면 ‘제미니 맨’은 특수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에 관한 심도 깊은 질문은 내놓는다. 이안은 여기에서 영화화적으로 한 발 더 나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두 명의 남자. 헨리와 그의 복제품 주니어는 모두 윌 스미스가 1인 2역으로 나온다. 그런데 25살의 주니어는 윌 스미스 연기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젊은 윌 스미스는 모션캡처를 통해 탄생한 100% 디지털 캐릭터다.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는 얘기. 두 명의 동일한 인물(배우와 디지털캐릭터)이 대결하는 장면을 찍으면 배우와 디지털 캐릭터의 움직임이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배우의 몸동작과 달리 디지털캐릭터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럽고 엇갈리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때 감독이 던진 승부수. 이안은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디지털캐릭터의 액션 장면 밀도를 높이기 위해 초당 프레임을 바꾼다.

디지털 캐릭터는 1초당 120프레임(통상은 1초당 24프레임이다.)으로 촬영되었다. 격투 신에 등장하는 주니어의 몸동작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매끄러운 건 이 때문이다. 원본과 같은 DNA로 이뤄진 복제인간이라면 당연히 원본과 같아야 한다. 습성도, 성격도, 사고방식도, 심지어 몸동작까지도. 이안은 단순히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에 머물지 않았다. 내용을 만들어내는 형식까지 완벽하게 일치할 때 관객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이 탄 여객선이 아닌 바다에 공을 들이면서 3D로 만든 공포와 고독의 망망대해를 관객 앞에 내놓았던 이안이었다. 할리우드의 기존방식에서 탈피하여 디지털캐릭터를 만들고 초당 120프레임의 촬영속도로 움직임을 일체화시키려한 감독의 고민 덕에 ‘제미니 맨’은 신기원을 이룩한다.

이안 영화에서 특수효과와 3D 등은 과학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쓰이지 않는다. 인간 본질에 다가가고 심연의 공포와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드높이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위대한 작가는 냉철한 이성이 분별없는 감성을 누르고 형식이 내용을 압도한다.

백정우 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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