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거짓으로 뒤섞인 엄마의 회고록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거짓으로 뒤섞인 엄마의 회고록
  • 배수경
  • 승인 2019.12.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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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역할에 소홀한 천상 배우
그녀를 원망하는 딸과의 화해
날 선 공격 속 잃지 않는 유쾌함
현실적인 모녀의 모습과 흡사
파비안느에관한진실
 

“엄마, 이 책에는 진실이라곤 없네요.” 전설적인 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는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와 사위 행크(에단 호크), 손녀 샤를로트가 미국에서 날아온다. 그들은 처음에는 반갑게 인사하는가 싶더니 무슨 일인지 서로에게 날을 세운다. 심지어 교정보듯이 꼼꼼하게 책을 읽은 뤼미르는 엄마의 책에 진실이 없음을 공격하며 파비안느를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있는 걸까?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어느 가족’으로 2018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을 벗어나 처음 제작한 영화다. 그간 ‘걸어도 걸어도’(200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 등 끊임없이 가족에 대한 서사에 매달려온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역시 가족이야기다.

뤼미르는 엄마의 역할보다는 배우의 길에 더 집중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갖고 있다. 엄마의 회고록을 읽은 그녀가 분노하며 입에 올린 이름은 ‘사라’. 뤼미르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엄마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의 불화를 증폭시킨 듯 보이는 사라는 엄마의 친구이자 배우였다. 파비안느는 “나쁜 엄마, 나쁜 친구여도 좋은 배우인 게 나아”라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녀에게는 실제 삶 역시 연기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영화는 엄마와 딸의 서로 다른 기억, 그리고 말하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던 진심을 확인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들의 화해 과정에는 영화 속 영화가 한몫을 한다. 영화 속 영화 역시 엄마와 딸 이야기다. 우주로 떠나 늙지 않는 엄마가 7년에 한 번씩 딸을 찾아오는 SF영화 속 파비안느와 마농의 연기를 보며 그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모녀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모녀 간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에도 파비안느는 “이렇게 연기했어야 하는데”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천상 배우이다. 파비안느에게는 회고록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모두 하나의 연기나 다름없다. 매니저에게 사과를 할 때도 딸이 써준 대본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진실이 없을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인 듯 보인다. 배우가 연기하는 배우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가족이란 누구보다도 가까워 서로를 잘 아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속내를 더 모를 수 있다. 가끔씩은 화내고 미워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 모녀가 날을 세우며 서로를 공격하지만 전반적으로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것은 그들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티격태격하는 파비안느와 뤼미르는 실제 모녀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감독은 그간 보여왔던 묵직하고 무게있는 문제의식은 조금 덜어내고 프랑스 영화 특유의 유머를 더함으로써 역시 고레에다 감독이라는 찬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까지 세 명의 배우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는 선물같이 느껴진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감독, 배우, 그리고 스토리까지 3박자가 잘 어우러져 영화 속 가족 이야기에 107분 동안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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