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낙엽에만 잔인한 것인가
가면의 나라 혼돈의 늪
그 숲 드는 누구나 순록이 된다
폭풍 눈보라에 길은 묻히고
흩날리는 것 오직 구름 날갯짓뿐일지라도
금 간 하늘이나 지켜보는 눈 때문은 아닌데
날숨마저 무거운 그곳
낯선 동토 처음 들었을 때
어린 자작나무도 그랬을 것이다
푸르른 기억은 알록달록해지고
너울 몸짓은 놓을 수밖에 없기에
늘어가는 것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낼 수 없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밤마다 다가오는 늑대 바라보며
남겨진 상처마다 골방 인형처럼 눈 박았을 것이고
타오를 그 언젠가를 층층 껍질마다 새겼을 것이다
사람 숲속 사오월에 진 누구처럼
◇권순학=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과 『그들의 집』이 있고 저서로 『수치해석기초』가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기계IT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한국시인협회 및 한국지능시스템학회 회원이다.
<해설> 길지 않은 삶에 참 많고 많은 사건, 사고를 겪은 베이비세대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하루하루의 삶이 마치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있다는 화자.
자작나무가 숲에 처음 발걸음 하였을 때처럼 겁 없이 뛰어들었던 그때 그 시절, 참으로 비바람 눈보라가 왜 그리 거칠고 잦았는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무뎌진 오늘 그 숲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 가를 탄식하는 화자의 번민이 가슴을 적신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