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꽃
앉은뱅이꽃
  • 승인 2019.12.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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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여름내 놋숟가락으로 긁던

침묵의 조각들이 헛구역질이다

늘 앉아있는 게 일인 흰머리 노파

무슨 업보인지 아들도 그러하고

예닐곱 살 손자마저도 그러했다

곰팡이 핀 말들 햇볕 쬐기엔

담벼락 아래가 안성맞춤인 듯

키 낮은 앉은뱅이꽃으로 나와 앉았다

공명만 울리다 사라지곤 하는 말이

어느새 부메랑 되어 녹슨 골반을

사각사각 싸락눈으로 긁고 있다

삭아 내린 정강이뼈 끌고

눈 쌓인 지붕 아래로 기어온 땅거미에게

앉은뱅이꽃 지팡이가 되어주고 있다

한뎃잠 자며 앉았던 노파의 자리

열반에라도 들었다는 것인지

입안 백태처럼 온통 허옇다

◇이복희= 문학시대 신인상,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 회원, 구상예술제 금상, 시공간 회원, 낙동강세계평화문학상, 선주문학상 수상, 구미사우회 회원

<해설> 앉은뱅이꽃은 다양한 방언이 있다. 연한 바이올렛 색깔의 꽃을 피우는 제비꽃, 자주 노랑 분홍 흰색의 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시드는 채송화, 흰꽃과 누런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있다. 모두 우리 이웃의 정겨운 이름들이다. 이 시의 입안 백태처럼 허옇다는 채송화 또는 민들레를 지칭하는 것 같다. 한데 이들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입장에는 다소곳 서 있는 것이리라. 앉은뱅이꽃이란 ‘작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앉은뱅이꽃 사이로 불쑥 해바라기가 서 있듯이…. 시어의 질감이 청화하고 경쾌하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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