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 몸처럼” 말 위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여체
“마치 한 몸처럼” 말 위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여체
  • 황인옥
  • 승인 2019.12.11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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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까지 동원화랑 ‘이석조’展
말과 여체서 에로티시즘 동시 발견
화려한 색채감에 해학적 화풍 더해
야하기보다 순수미 돋보이는 형상
7-콜로라도의 달빛
이석조 작 ‘콜로라도의 달빛’.

벌거벗은 풍만한 여체가 근육질의 말(馬) 위에서 자유분방함을 뽐낸다. 예측불허인 말 위에서 각양각색의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서 말과 여인이 일심동체인 것을 직감한다. 둘 사이에 흐르는 선(線)의 변주가 애초부터 둘이 아닌 하나였던 듯 경계를 허물고, 굳건한 믿음마저 감돈다. 작가 이석조의 작품이다.

계속 주위를 맴도는데 “이거다”라는 이유를 꼬집을 수 없을 경우 운명을 들먹인다. 작가에게 말(馬)이 그런 존재였다. “생(生)의 전환기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말”이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말과의 첫 인연은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시린 부인 아이린(Irene Dugdale Lee)과 관련됐다. “미국 중서부의 사우스다코타 출신인 아이린은 어린시절부터 말을 탔고, 어른이 되어서도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5년전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작가에게 죽음마저 대신 할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인 존재였던 부인이 좋아한 말이었으니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인연은 더욱 절박한 상황에 찾아왔다. “그림에 미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생사를 오갈 때 말을 타며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 말이 무너진 그를 일으켜 세운 것.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연만으로도 회화의 소재로는 충분하다. 경험 속에 산재된 수많은 감정들을 형상으로 토해내기에 한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이상이 필요했다. 회화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작가는 말(馬)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線)에 주목했다. 여체같은 부드러운 곡선의 미(美)를 발견했다. 그는 “말의 몸에서 여인의 몸이 갖는 에로틱한 아름다움을 보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말과 여체에서 에로티시즘을 동시에 발견한 것.

전시작 중 벌거벗은 남녀의 몸이 얽히고설킨 작품들도 있다. 이 역시도 에로티시즘과 관계된다. 작가는 에로티시즘이야말로 프로이트의 리비도적 에너지라 칭송한다. “절대적인 욕망이 있어야 절대적인 것들이 나올 수 있죠. 문학이나 그림이나 다 절대적인 욕망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최근 개막한 동원화랑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평면회화 일색. 형상이 자유분방하고 색채가 화려한 작품 30여점을 모았다. 말과 여인, 말과 기수 등의 형상이 거리낌없는 분방함으로 자유롭다. 인물화도 몇 점 걸렸는데 해학이 넘친다. 찰리 채플린의 몸에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그리는 식이다. 뭘해도 중간은 없는 것처럼 자유와 해학이 넘실댄다.

 

색채 또한 예사롭지 않다. 빨강, 파랑, 노랑 등의 3원색은 물론이고, 강렬한 색의 대비에도 적극적이다. 색은 작가가 천재화가들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바라본 분야다. 그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나 동양의 불화가 형태면에서 최고의 리얼리즘을 구축했다. 그들이 끝장을 냈는데 내가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나는 가장 회화적인 것에 도전장을 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 하나의 방법론이 색채였다”고 말을 이어갔다. “색채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깨달았어요. 바이올린 옆에 비올라가 있어야지 전혀 다른 것이 있으면 부조화잖아요. 색채 역시도 균형이 맞아야 베테랑이라 할 수 있죠. 그 경지를 위해서 부단히 훈련해야 했어요.”

색채에서 가능성을 모색했지만 형상도 간단치는 않다. 때묻지 않은 순수가 어른댄다. 형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 차고 들어온 순수였다. 누가 봐도 20~30대의 젊은 여성의 그림처럼 다가오는 배경은 그림 속에서 살아 꿈틀대는 순수가 있다. 순수한 형상과 화려한 색채의 대비에서 때묻지 않은 젊은 여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회화 이전에 조각이 먼저였다. 인물의 특징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낸 인물상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다 1987년에 만다라 그림으로 돌아섰다. 서양의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밝은 색을 보고 연관성을 찾았고, 그즈음에 동양의 만다라가 눈에 들어왔다. 만다라를 그렸지만 조각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연결성이라는 조각의 구조들이 만다라 속 형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서양보다 만다라 속의 색채가 훨씬 밝고 다양했어요. 그래서 이거다 싶었죠.”

평면도 5년전부터 변화가 시도됐다. 이전 작업들에서 수많은 형상들을 만다라 속에 집적했다면 최근에는  탁 트인 평면에 개별적인 형상으로 독립성을 확보했다.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스승이었던 부인과의 이별이 인생을 뒤흔들고 살아야 할 의미를 찾으면서 변화한 열린 회화였다. 당시 말(馬)이 아내의 분신처럼 다가왔고, 말을 소재로 한 색채의 향연이 시작됐다. “존재감 없던 저를 아끼고 격려하며 화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었던 정신적인 지주였던 부인이 타계하자 지금의 화풍으로 변화했죠.”

작가가 만다라와 말과 여인에서 공통분모가 있다며 “찾으라”고 했다. 그때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것이 조각이었다. 그때 작가가 “선과 선으로 이어진 형상들이 흡사 하나의 덩어리 같지 않느냐”며 선방을 날렸다. 회화가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조각 작업을 했던 영향이 회화 작품에 배어들 수밖에 없죠. 마치 조각하듯 회화를 그렸어요.” 전시는 27일까지. 053-423-13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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