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반찬가게의 비법
그 반찬가게의 비법
  • 승인 2019.12.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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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만 튕기던 손도 늙어간다 라면으로 때운 속이
불편해도 불 맛 라면 출시 광고에 어느 저녁, 편한 불
맛의 한 끼로 예약해둔다 손은 미안하지만 앞으로 당당
하기로 한다

마트 옆 반찬가게엔 물방울 튕기던 손들이 긴 줄 선다
주름진 손을 숨긴 나는 반찬가게 주인에게 이 많은 반찬
을 어떻게 매일 요리하느냐고 물었더니,

죽을힘으로 만듭니다
그녀 대답, 발효된 저염도 건강식으로 걸어 나왔다

죽을힘으로 무친 파래와 김치 양념을 내 비법인양 밥상
에 차린다 물방울 튕기던 손으로 쓴 내 시는 밍밍하거나
짜다 사람들은 간이 맞지 않는 내 시를 모른 척했고, 감
동으로 푸짐한 상을 차려내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 반찬가게의 비법과 그녀의 고단까지 질투하는 내 시
의 밥상에서 봄은 흔들림 없이 기다려 준 나무에게만 꽃
을 허락하고 있다 암만해도 더 죽을 만큼 그리워해야 입
맛 도는 시가 될 모양이다

◇모현숙= 조선문학 신인상으로 등단(14),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조선문학문인회 회원, 詩공간 동인, 시집: <바람자루엔 바람이 없다>

<해설> 시(詩)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화자의 고뇌를 읽을 수가 있다. 죽을 만치 그리워해야 입맛 도는 시를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잘 쓴 시 한편은 잘 차린 밥상과 같다. 맛있게 먹는 손들의 즐거운 표정에서 좋은 시 한편 읽어 감동 먹은 독자와 다르지 않다.

물방울 튕기며 늙어가는 손이 당당하기로 한 날부터 비법과 고단의 밥상에서 봄을 기다려 준 나무만이 꽃을 피우듯이 인고의 긴 절차탁마만이 명작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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