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호리기와 새홀리기 - 나그네새의 텃새 둥지 빼앗기
새호리기와 새홀리기 - 나그네새의 텃새 둥지 빼앗기
  • 승인 2019.12.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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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같은 새인데 ‘새를 호리는 새’와 ‘새를 홀리는 새’가 있다면 어느 말이 더 어울릴까 생각하다가 사전(두산동아 새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새호리기’가 표준말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새홀리기’가 틀린 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새호리기’로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좀 더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등성마루님의 ‘네모 속 여행’ 블로그에서 새호리기의 생생한 생태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등성마루님은 올 8월경 인천 송도의 어느 숲에 새호리기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매주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새호리기가 까치집을 빼앗는 과정, 수컷이 암컷에게 먹이를 공중에서 전달하는 과정,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육추(育雛) 과정, 지붕 위에서 새끼들에게 날기 연습을 시키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촬영하여 블로그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새호리기의 생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새호리기(Eurasian hobby)는 매목 매과에 속하는 새로 분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5월 31일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새호리기는 일반적으로 겨울에 찾아왔다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가는 나그네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8월에도 이곳에 남아 육추를 한다면 점점 텃새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멀리 북쪽에서 전쟁이나 장사 등 경위와 어떠하든 간에 우리나라를 찾아왔다가 이곳 산세가 아늑하고 날씨가 따뜻하여 마침내 귀화하여 정착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새의 이름이 왜 하필이면 ‘새호리기’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깁니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새들을 홀려서 정신을 빼어놓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앞섭니다.

새호리기는 나그네새이다 보니 둥지를 제대로 지을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어놓은 남의 둥지를 빼앗게 됩니다. 이 때 자신의 몸 크기에 알맞은 까치집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까치집이 있는 숲속에서 난데없이 요란한 울부짖음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새호리기가 까치집을 빼앗고 있는 순간이라고 보면 얼추 맞아떨어진다고 합니다. 나무 아래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깃털을 보고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새호리기는 몸을 잔뜩 옴츠린 채 까치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까치는 자신보다 더 작아 보이는 새호리기가 다가오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그 눈빛을 보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게 됩니다. 접근하는 새의 눈이 천적(天敵)인 매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새호리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다가 까치 앞에서 갑자기 날개를 펴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을 해댑니다.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일이라 까치는 그만 혼비백산하여 자신의 집에서 뛰쳐나와 도망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새호리기는 그 까치집을 차지하고는 결코 비켜주지 않습니다. 까치는 몇 번이나 자신의 집을 되찾으려 하지만 날카로운 새호리기의 발톱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오히려 새호리기에 붙잡혀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상황입니다.

그 뒤, 새호리기는 빼앗은 둥지에서 새끼를 기르고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더 큰 나무나 옥상으로 새끼를 집어 올려 날갯짓을 시키고는 마침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립니다.

빼앗은 둥지는 황폐화되어 전혀 쓰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나서 이 새호리기는 또 다른 곳에서 작은 새를 홀리어 잡아먹거나 집을 빼앗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만만한 사람을 밀어내고 선거구를 빼앗는가 하면, 여러 압력으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해놓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으니 새호리기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말이 전혀 옛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러더러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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