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다, 돼지 해
수고했다, 돼지 해
  • 승인 2019.12.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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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2019년이'돼지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만큼 올 한 해 정신없이 달려왔다. 새해 첫날은 늘 아이들 방학 기간이라 함께 집에 있었다. 고3과 고1이 시작되는 아이들과 첫 날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서점에 가서 책도 사고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던 것 같다. 사춘기가 시작된 줄 몰랐던 아들은 수능 시험을 치르고 마음 편히 가겠다며 거절을 했고, 딸은 엄마랑 둘이서 가고 싶다고 했지만, 김이 샌 홍희는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렇게 첫 날은 갔다.

1월,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에 쉬고 싶지만 늘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학인 아이들이 청소를 담당해주어 기분 좋게 손빨래를 하고 있을 때 작은오빠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놀랐다.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큰새언니의 교통사고와 죽음은 충격이었다. 새해 인사를 하기도 전에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더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더 친근함을 표현하지 못함을 애석해했다. 혼자 남은 오빠를 생각하며 더 마음이 아팠다. 갑작스런 아내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했다. 아는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하고 지내야겠다고 결심도 했다. 몇 달을 우울하게 보냈다. 슬퍼만 하고 있으려니 자신이 더 힘들어 점점 잊었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과 부딪치다 보니 멀리 있는 사람도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3월에 아이들이 개학을 했다. 학교 학부모 설명회를 가서 상담을 했다. 고3 담임선생님은 수시로 아들이 원하는 대학을 가기가 어렵다고 단정했다. 아직 3학년 1학기가 남아있는데, 미리 갈 수 없다는 말에 불안했다. 사춘기 아들은 절벽 앞에 마주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수시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며 정시에 도전하겠다고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도 말렸지만 이미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의욕이 최고조이고, 수능치고 성취감을 맛볼 것이라는 아들을 믿고 싶었다. 그렇게 불안하게 4월, 5월이 지나갔다.

6월 회사일에 최고의 에너지를 쏟았다. 5월 평상시처럼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보니 최저였다. 작년의 실망감으로 열심히는 하지 않고 중간정도만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는데 너무 일을 안 한 것처럼 결과가 나왔다. 직장 생활 하면서 일을 못한다는 평판은 듣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이러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그때부터 11월까지 일에 몰두했고 성과는 좋았다.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하며 고맙다는 말도 듣고 성취감도 얻으니 올 한 해 보람있다. 상까지 받으니 무척 기쁘다.

8월초 오랫동안 소원했던 자동차를 구입했다. 벅찬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남편의 형이 돌아가셨다. 올 해만 두 번의 상을 당했다. 50대인데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실감했다. 건강하다고 자부하지만 병이나 사고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이 삶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생이 그리 길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시간이 아까웠다. 죽기 전에 해야할 버킷리스트를 다섯 가지 정도 만들어 보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사소한 것에 집중했다. 남 눈치 안 보고, 하기 싫은 거 하지 않고, 남의 말에 쓸데 없는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썼다. 그 결과 몰입의 즐거움과 성과에 만족한다.

단지 12월 아들이 대학입학을 두고 결정을 내린 결론에 완전한 지지를 못하고 지켜보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려 홀가분해 보인다. 쉬어라. 아직 니가 가야 할 길이 많으니 내년 한 해 꿈도 꾸고 꿈을 이룰 방법도 찾고 니 자신을 찾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고 한다. 하루가 나이 분의 1(1/나이)만큼 체감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시간이 가속도가 붙어 빨리 간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나 빨리 한 해가 가는지. 다가올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나 스스로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만들어야겠다. 의지와 달리 생기는 나쁜 일들에는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만큼만 생겼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늘 건강하고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는 소망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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