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건강보험누적흑자 21조에 대한 불편한 진실
사라져가는 건강보험누적흑자 21조에 대한 불편한 진실
  • 승인 2020.01.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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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대구의사회 공보이사
아이꿈터아동병원 부장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한 해 계획을 세우거나 소원을 빈다. 나 역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었지만, 국민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면 하는 소원도 같이 빌어본다.

현 정부의 여러 의료정책 중 가장 핵심은 문재인 케어(이하 문케어)이다. 2017년 5월 출범한 정부는 비급여 항목들을 급여화(보험적용)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2016년 62.6%였던 건강보험 보장율을 임기 말까지 70%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 문케어를 시행하였다. 이것은 이전 정부가 남겼던 건강보험누적흑자 21조원(일종의 비상금)과 매년 3%대의 보험료 인상을 바탕으로 임기 5년 동안 건강보험 보장율을 70%로 유지하겠다는 포부가 큰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국민(수요자) 및 의료계(공급자)와 충분한 논의가 되지 않은 채 정부의 일방적인 주도로 발표되었다. 당시 의료계는 보장성 강화라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였다. 하지만 실행 방법 및 속도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며,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국민 재정부담(보험료나 세금상승)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재원 마련을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정부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초음파와 MRI 급여화, 교수 특진비 폐지 및 상급 병실료 급여화를 우선하는 대신, 필수의료(응급이나 중환자의료, 암 등 중증진료 등) 지원 확대, 장기적 저수가로 인한 왜곡된 의료환경(1·2차 병·의원 붕괴 및 상급병원 환자쏠림)을 바꾸기 위해 적정수가 보존, 공공의료 지원 확대, 그리고 다가올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 등 전국민 의료보험제도(1989년) 이 후 미쳐 돌보지 못했던 의료제도와 정책에 대해 살펴보는 기회로 삼자고 정부에게 요구하였다. 21조의 흑자는 온 나라가 경제발전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정부가 놓쳐버린 의료계의 사각지대를 점검하고, 이에 대한 보수공사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계 의견을 무시한 채 속도와 방법이 잘못된 의료정책인 문케어를 단행하였다. 그 결과 시행한지 2년 넘은 지금, 보험재정 적자가 늘어나면서 잔고가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2018년 우리나라 경상의료비(보건의료 서비스와 재화에 소비된 국민 전체 1년간 총 지출액)는 144.4조원, GDP(국내총생산)대비 경상의료비 비율은 8.1%이었다. 이는 지난 9년(2009년~2017년)간 GDP대비 경상의료비 평균비율(6.7%)보다 높다. 다시 말해 2018년 의료비 지출이 이전 몇 해보다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또한 2017년까지 7년 연속 누적흑자였던 건강보험재정이 2018년 1,778억원, 2019년 3조 2천억(예상치) 적자를 보이며 2년 연속 적자를 나타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누적적립금도 17조 4천억(2019년 8월말 기준 예상치)으로 감소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속도라면 지속되는 적자로 인해 2024년엔 적립금 모두가 소진될 전망이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변화(경제활동인구가 줄어 보험수입이 줄고, 고령화로 보험지출이 늘어남)를 반영하면, 2022년에 누적적립금이 소진되고, 2028년엔 누적적자가 234조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연세대 장성인 교수)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문케어(2017년~2022년)와 제1차 건강보험종합계획(2019년~2023년)을 발표하면서 보험재정에는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올해만 해도 문케어 발표당시 예상했던 액수보다 8,310억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해 말 많은 언론들은 이런 재정소요 예측 실패를 걱정하며, 문케어 실패에 대한 기사들을 쏟아내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달 정부는 뇌·뇌혈관 MRI 급여화를 시행한 지 1년 만에 급여적용기준 축소 감행(본인부담금을 80%로 상향)을 결정했다. 보험 적용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6개월간 전체 MRI 건수가 이전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증가해 예상보다 많은 재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계속되는 재정예측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확실한 재정마련 계획 없이 금년 3/4분기에는 흉부초음파, 4/4분기에는 심장초음파 및 척추 MRI 급여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현재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가 넘은 대한민국 국민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는 바로 의료비지출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인들은 더 많은 의료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현재 부담하는 보험료나 세금을 더 많이 내거나 본인 부담율을 더 많이 올려야한다는 사실을 공론화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문케어와 같은 정책은 전면백지화해야 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재정을 필수의료(중환자의료나 응급의료 등) 등 무너져가는 의료계의 현재와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국민들의 피땀으로 모았던 21조는 지금 이 순간도 헛되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늘어난 적자로 인해 매년 200조, 아니 그 이상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정치인들은 이를 함구한 채 의료계의 현재와 미래에 투자해야 할 돈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돈 잔치를 하고 있다. 아무도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직면할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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