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로애락, 알록달록 화려한 색채로 승화
삶의 희로애락, 알록달록 화려한 색채로 승화
  • 황인옥
  • 승인 2020.01.1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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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명미 개인전…3월 13일까지 우손갤러리
미술계 주류 논리적 개념 탈피
감성·직관 중심 작품세계 구축
40년째 독자적 색채 화풍 고수
사람부터 일상 속 소소한 소재
깊은 묵상과 성찰로 건져올려
놀이처럼 마주한 삶 ‘오롯이’
 
이명미 작가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이명미 작가가 우손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이명미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서양화가 이명미가 인터뷰 때마다 “이명미가 조명될 때가 올 것”이라는 자조(自助) 어린 말을 되뇌이고는 했다. 세상을 향한 예언 같은 강렬한 한마디에서 모두가 ‘Yes’를 말할 때 과감하게 ‘No’를 부르짖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외로운 여행자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외침의 자신을 향한 일종의 자기 주문이다.

혹자는 이명미야말로 대구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고 반문하겠지만 정작 작가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대구미술관과 인당미술관, 신라갤러리, 갤러리 분도 등 대구의 핵심 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들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지만 함께 활동했던 단색화 계열의 작가들의 성공에 비하면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

그가 “내 발이 젖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가지 않고 깨지더라도 내 발자욱을 한 번 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색을 쓰고 형상을 들여놓았다”며 “단색화가 대세이던 70년대 중반이었으니 얼마나 파격이었겠나”고 반문했다. 작가는 흔들림없이 40년을 자신의 화풍을 고수해왔다. “색으로 승부를 건지도 40여년이에요. 이제는 색으로 주목받는 시대가 오지 않겠어요?”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앙데팡당전’, ‘서울 현대미술제’, ‘한국실험작가전’ 등에 적극 참여하며 일찍이 화단에 등단했다. 1974년에는 한국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이던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 멤버이자 최연소 여성미술가로 참여하며 남성중심의 흐름에 존재감을 각인 시켰다. 70년대 중반까지는 작가 역시 단색화가 강세였던 시대적인 조류를 따랐다. 스펀지를 불에 태우거나 캔버스에 비닐을 부착하는 등 물성을 이용한 실험성 짙은 작품을 발표하며 단색조의 개념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개념이 짙어지고 계몽가적 요소가 깊어질수록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왔다.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부자유스러움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70년대 후반 즈음이었다. 정확히 1977년 서울 그로리치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 ‘놀이-PLAY’라는 작품을 출품하며 이명미는 과감하게 단색계열과의 이별을 고했다. 보색대비도 마다않는 화려한 색채와 일상에서 만나는 소박한 소재들을 화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

“논리적 개념을 중시했던 기존의 미술 경향 대신에 저의 감성과 직관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구하하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예술적 표현의 즐거운 관능이 찾아왔고, 무한한 자유가 행복을 안겨주었어요.”

색채를 과감하게 수용한 작가의 화풍에 당시의 평단이 쏟아낸 시선들은 곱지 않았다. ‘화화란 무엇인가’, ‘한국의 정신의 뿌리는 무엇인가’ 한국의 역사와 정신, 회화의 본질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천착하며 구상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추상으로 치달았던 당시 단색화 계열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전통적인 예술관의 입장에서 화려한 색과 다양한 형상을 추구했던 이명미의 작업이 형이상학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작가는 전통이야말로 새로운 가치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재평가의 필요성을 작업을 통해 언급해 왔다.

화단의 평단에 주눅들거나 위축될 이명미가 아니었다. 세상을 만족시키려 하기 보다 스스로 행복한 작업을 추구했고, 과감하게 단색을 버렸다. 그러자 만족감은 배가 됐다. 작업이 놀이처럼 재미있어졌고, ‘놀이’는 이후 지금까지 이명미 작업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개념 일색의 계몽가적 태도를 버리고 감성과 직관을 바탕으로 한 파격적인 색채를 들여놓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희열이 차올랐어요.”

색의 변주만큼이나 작업의 소재도 다양하다. 동물과 사람, 식물 등의 생명체부터 집과 의류, 음식 가구 등의 생활용품, 숫자와 문자 등의 사회적 의미를 지닌 존재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는 존재들은 모두 ‘놀이’의 재료가 된다. 작가에게 삶과 놀이는 일심동체다. ‘놀이’가 곧 ‘삶’이고, ‘삶’이 곧 ‘놀이’인 것. 

사실 작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안정적인 작가로 살아가는가 싶었지만 가까운 가족들의 병마와 죽음을 겪으면서 상처가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짖눌렀다. 작업마저 휴직기를 가져야 할 때도 있을 만큼 녹록치 않은 상황들을 지나왔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작가는 ‘놀이’로 승화해냈다. 파격적인 색채, 일상 속 소소한 소재들이 만나서 어우러진 화폭은 흡사 한 편의 시가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은 상처를 딛고 일어선 성찰과 묵상의 결정체였다. 그의 놀이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의미.

“저는 노자나 장자를 말하지 않아요. 대신 산자의 이야기를 하려 해요. 살아가면서 내가 맞닥뜨렸던 고통과 애환들이 나를 더 강근하게 만들었고, 그 이야기들이 작품으로 풀어내려 했어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명미 개인전은 우손갤러리에서 3월 13일까지. 053-427-773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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