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조각가 박휘봉(1) 철·청동·돌·나무…귀 기울이면 생명이 들린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 조각가 박휘봉(1) 철·청동·돌·나무…귀 기울이면 생명이 들린다
  • 황인옥
  • 승인 2020.01.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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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재료 본연의 성질 집중
비현실적 수사학·사실주의 구현
박휘봉 작
박휘봉 작 ‘길에서 만난 사람들’
 
박휘봉작-도시인2006
박휘봉 작 ‘도시인’
 
다시-박휘봉작-작비상
박휘봉 작 '비상'

“…자연은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조각가 박휘봉 선생(이하 박휘봉)의 작업노트 일부분이다. 올해 여든에 든 조각가 박휘봉은 여전히 자연에 눈을 맞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인다. 작업 이야기나 지난날의 낭만을 회상할 땐 얼굴 전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진다. 겸손하면서도 순수한 그 미소의 효시가 궁금하다.

대구에서 자동차로 30분을 달리니 성주군 선원 4길이 나왔다. 겨울 들녘은 비교적 고요했다. 하얀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들판을 지나자 박휘봉 작가의 작업장이 자리한 마을이 윤곽을 드러낸다. 마을에서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앞이 탁 트인 양지바른 곳이다. 낙동강을 넓게 펼쳐놓은 집 언저리에서 조각 작품들이 문패를 대신했다. 58-9번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세월에 마모된 작품들이 먼저 객을 반긴다. 철조작품 곁으로 동그랗게 눈을 뜬 돌조각 작품들이 줄지어 선 작업장 마당은 소박한 조각공원의 면모를 갖추었다. 깔끔한 분위기가 부지런한 조각가의 하루를 짐작하게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지런한 공구들과 철선들이 작가의 다음 행보를 일러준다. 장작난로의 온기는 작가가 풍기는 분위기에 버금갔다. 훈훈했다.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것이 제목일 수도 있다. 재료나 규모 또는 장르일 수도 있겠다. 작가의 성향이나 습관이 감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박휘봉 작가의 경우도 그렇다. 1941년생인 조각가 박휘봉을 가장 먼저 주목하게 하는 요소는 ‘열정’이지 않을까. 2~30대 청춘들의 에너지에 버금가는 작업열정이 80세인 지금도 꾸준하다. “남의 손에 못 맡긴다. 용접도 내가 한다. 힘이 모자라면 깡다구로 한다.” 작은 체구의 조각가가 감당했을 작업의 무게와 열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에 작가의 직관이 오롯이 투영되길 바라는 조각가 박휘봉이 한 선택이다. 작품에 그의 기(氣)가 온전히 스며있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18회의 개인전을 여는 동안 보여준 성실함도 의지와 열정의 다른 모습이다. 체화된 겸손은 그의 작품을 한 번 더 주시하게 한다.

습관과 태도는 몸가짐의 다른 말이다. 행동은 곧 인격이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작품을 가장 잘 하는 좋은 방법은 꾸준함이다. 어떤 예술도 쉽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단단히 정한 후 그 길을 전진하고 반복해서 훈련하면 숙달된다.” 바로 박휘봉이 찾은 자신만의 작업 요령이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작가가 후학과 후배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해당된다. 인면인심(人面人心)이야말로 조각가 박휘봉을 설명할만한 합당한 표현이지 않을까. 인격과 예술격을 동일선상에 둔 감상자들에게 박휘봉의 작업세계가 특별하게 회자되는 이유이다.

50여 년 전 “숙자씨! 함께 영화 보러 갈래요?”하고 난후에 현재의 아내와 결혼하게 됐다는 박휘봉 작가는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현재 대학생 손자까지 둔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에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가 묻어있다. 그는 부산사범대 60학번이다. 나이로 치면 미술계에선 연장자이지만 수직적인 관계나 상하의 위계를 스스로 밀어낸다. 권위의식에 곁을 내어주지 않으니 그를 대하는 남녀노소는 편안하다. 교직에 처음 몸을 담은 시기는 1962년이다. 당시 박휘봉에게 작업은 곁눈질 같은 것이었다. 대구상고에 재직 중이던 81년에 영남대학교 조소과에 편입을 결심한 것은 배움에 대한 목마름과 작업에 체계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그해 여름 인체 조각상 ‘나부’로 신라미술대전에서 입선을 하고 이어서 대구시전에서 ‘화(和)’로 특선을 한다. 84년에 ‘율’로 대상을 받고 87년도에는 ‘율’ 시리즈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철조, 석조, 목조, 소조에서 고르게 재능을 발휘했던 박휘봉은 현재 철 조각 작업에 몰입하는 중이다. 철은 큰 형상을 제작하는데 용이한 재료이다.

철조 작업의 출발은 우연한 기회였다. 고물상의 철근 무더기에서 발견한 철선이 철 작업의 시작이었다. 다듬지 않은 철선의 구불구불한 느낌과 박휘봉의 감성이 접점을 이룬 것이다. 유연하면서도 강직한 철선에서 김정희의 부작난과 추사체의 바윗돌 같은 느낌을 포착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한다. 일종의 발견이었다. ‘귀 기울이기’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철선으로 비현실적인 레토릭(rhetoric)과 경험적인 현실을 인식하려는 사실주의(realism)를 구현하고 있다.

작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은 25년 전으로 상정된다. 1994년에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부터다. 서울의 造形갤러리에서 연 개인전(9월 23~10월 2일)을 대구의 맥향화랑(1994년 10월 4일~10월 10일)이 바통 받았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브론즈가 대부분이다. 당시 미술평론가 최태만은 ‘단순소박성으로 표현된 飛翔의 형상’이란 평론을 박휘봉의 개인전에 부쳤다. 냉철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비평이 작가에게는 다소 경직되었던 당시의 작업 방식을 방향전환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았을까 한다. 직관에 의지한 박휘봉의 작업은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솔직함에서 출발한 것 같다. 그의 근작을 감상한 것은 지난해(2019년) 5월이다.

박휘봉의 18회 개인전 ‘실체와 비실체의 경계’가 봉상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전시실 바닥에 놓인 사각 수조엔 물이 흥건했다. 수조 속엔 폐 철근이 가득 담겼고, 겹겹이 포개어진 철근 가닥들이 마치 물의 움직임에 반응하듯 불규칙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자세히 보니 일부러 힘을 주어 구부린 철근은 아닌 듯 했다. 전시실 한켠에 직립해 벽에 그림자를 드리운 철근가닥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의 철근을 재활용해서 만든 작품이다. 앞서 밝힌 박휘봉의 작업일기와 같은 맥락이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이 작업 역시 ‘귀 기울이기’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의 석 조각 작품들도 귀 기울이기와 발견의 일환이다.

“길바닥에 들판에 흐드러지게 널려있는 돌, 발에 스치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면서 나와 만난다. 그것에 우리 인간들의 삶을 빗대어본다. 수많은 세월, 서로 부딪히고 구르면서 뜯기기도 하고 그 아픔을 견디면서 아무렇게나 쳐 박힌 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에 눈, 코, 입 아니 눈 하나 없든 코가 비뚫어졌든 한쪽 볼이 없든 어떠랴, 나는 그들의 내재된 생명을 일깨운다. 상(An Image) =‘길에서 만난 사람(민초)” (2017년 박휘봉 개인전에 부친 빅휘봉의 작업일기)

조각가 박휘봉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논리보다 의지를 중시하는 휴머니스트다. 잠언처럼 배우는 사람의 자세를 갖춘 박휘봉의 작업에서 핵심은 작가에게 내재한 에너지를 유형화 한 것이다. 그 효시는 세월이 남긴 환부를 침묵하며 견디는 것이었다. 진실에는 많은 장식이 필요치 않다. 작가의 말처럼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박휘봉 선생님
박휘봉 작가

△박휘봉은 1941년생이다. 국립부산사법대학 미술과,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64년 첫 개인전 이후(1967, 1987, 1994, 1999, 2003, 2005, 2006, 2007, 2008, 2009, 2009, 2015, 2017)14번째의 개인전을 가졌다. 12개 시도미술대전(한국문예진흥원 미술회관), 한·중미술교류전, 제2, 4회 아주미술협회연맹미전 (말레이시아, 한국), FRONT 2000전, EAST MEETS WEST:DlALOGUE(미국버지니아주 포츠머스시 고트하우스갤러리) 등에서 전시한 바 있으며 대구시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미술협회, 한국조각가협회, 한국신구상회, 대구조각가협회(고문)에서 활동하며 18회의 개인전 후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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