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 집서 살란다
너거 집서 살란다
  • 승인 2020.01.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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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발에 끼워지던 덧신

발가락 자리 내 발을 포개 놓으니

가늘고 구불거리는 길이

새벽 도마질에 톡톡톡 잘린다

갈라져 꺼칠꺼칠한 발, 그 발

감싸던 꽃무늬 덧신

먼 길 떠나실 때 몰래, 내 방 장롱에 드셨나

서리 내린 날에 서랍장을 밀고 나오더니

발등이, 발바닥이, 발가락이

닿았던 곳 꼼지락거리는 온기

늙어 꿈지럭거리기 힘들면

너거 집에 가서 살겠다던 어머니

장롱 제일 아랫단 서랍장에

정말로 와 계신 것이다

그리움이 발 덮던 치맛단

찔끔찔끔 나팔꽃 옮겨 딛는 걸음에도

발톱은 자줏빛으로 걸어 나왔다

잠시 펴지도 못한 굽은 등의 시간

그 꽃무늬를 내가 신었으니

아리다, 당신의 덧신

눈물이 발톱을 눌러온다

◇이복희= 문학시대 신인상,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에세이문예 회원, 구상예술제 금상, 시공간 회원, 낙동강세계평화문학상, 선주문학상 수상, 구미사우회 회원.

<해설> 어머니라 하면 작은 촛불이 생각이 난다. 어둠 저편에서 자식들 길 잃을까 불 밝히며 가족 위해 스스로를 심지 삼았던 희생의 꽃. 품안의 자식들 다 떠난 자리에서 행여나 찾아올 웃음을 지키려고 그 터 지키며 하염없이 녹아내렸을 어머니의 눈물어린 고백이리라 “너거 집서 살란다” -정광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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