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않아’ 털 ‘뿜뿜’ 날리는 그들의 짠내나는 사기극
‘해치지않아’ 털 ‘뿜뿜’ 날리는 그들의 짠내나는 사기극
  • 배수경
  • 승인 2020.01.1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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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 동물원을 구하기 위해
동물로 위장한 절박한 사람들
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들의 삶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세대
코미디 속 무거운 문제 엿보여
해치지않아
 

어린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아간 동물원에서 본 기린이나 사자의 모습은 오래도록 남아있는 유년의 기억이다. 지난 15일 개봉한 ‘해치지않아’(감독 손재곤)는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영화다.

2020년은 동물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세다. ‘닥터 두리틀’에 이어 ‘해치지않아’도 동물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두 영화 모두 (진짜)동물은 없는 동물 영화다. ’닥터 두리틀‘의 동물들이 VFX(Visual Effect)로 만들어졌다면 ‘해치지 않아’에 등장하는 동물은 동물탈을 쓴 사람이다. 시각특수효과로 만들어진 북극곰도 등장한다.

영화 ‘해치지않아’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훈(HUN)작가가 2011년에서 2012년에 걸쳐 다음에 연재했던 웹툰에서 스토리의 큰 틀은 갖고 오되 인물설정은 변화를 주었다. 웹툰의 주인공은 사육사 ‘철수’인데 반해 영화의 주인공은 국내 3대 로펌의 수습 변호사 ‘태수’(안재홍)다.

누구나 변호사만 되면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줄 알지만 실상은 태수 역시 고용에 대한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의 눈에 띄기 위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위기 상황에서 몸을 던져 대표를 보호하는 등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걸까. 그는 망해가는 동물원을 정상화 시키면 원하는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
 

해치지않아-3
 

그러나 아주 쉬워보였던 동물원 정상화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동물원에 동물이 없다. 멸종위기종 국제협약에 따라 동물들은 돈이 있다고 들여올 수도 없다. (이쯤되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동물들은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겨난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절박함과 성공을 향한 갈망이 더해져 그는 ‘사람이 동물탈을 쓴다’는 엉뚱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무리수를 두는 태수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성공해서 수습이 아닌 정식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다. 영화니까 가능한 사기극을 통해 동물원은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듯 하고 태수 역시 정식변호사가 된다는 목적을 이룬다.

그렇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처음에는 성공을 향한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어느덧 그의 마음 속에도 동물원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수의사 소원(강소라), 사육사 건욱(김성오), 해경(전여빈), 그리고 전 동물원 원장(박영규) 등 동물원 사람들에 대한 의리일지도 모르지만.

동물탈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지루하게 다뤄지지만 사람이 북극곰, 고릴라, 사자, 나무늘보 등 동물로 변장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중간중간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거기에 해경의 남친으로 나오는 성민(장승조)이나 황대표(박혁권)도 꽤 존재감을 발휘한다.

영화는 코미디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는 고용 안정과 동물보호라는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다. 웃으면서 영화를 보지만 그 속에 담겨진 갇힌 동물에 대한 문제가 꽤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해치지않아-2
 

“동물원은 아무리 잘 꾸며놔도 동물에게는 시멘트 감옥이다” 태수의 입을 통해 제기된 문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동물없는 동물원, 동물탈을 쓴 사람이라는 소재는 신선하지만 교과서적인 도식으로 마무리가 되는 점이 조금은 아쉽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합법을 가장한 불법도 쉽게 저지르는 기업,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친환경 생태동물원 역시 동물권보다는 수익이라는 인간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한 방법일 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좀 씁쓸해진다.

영화의 개봉과 함께 웹툰 ‘해치지않아’는 지난 4일부터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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