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밥 산다”는 작가 친구…대구 인심 ‘올랄라’
초면에 “밥 산다”는 작가 친구…대구 인심 ‘올랄라’
  • 황인옥
  • 승인 2020.0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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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한 프랑스 작가들의 시선
카페에 핸드폰 두고 나가도
훔쳐가는 사람 없다며?
처음엔 눈도 못 마주치더니
친구되면 가족처럼 챙겨줘
“친절로 단정짓기 어려워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감정
따뜻함에 묶인 것 같아”
내 현지 친구들이 느낀 건
번역할 수 없는 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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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에 대구에 와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끌레드 몽페랑 예술문화협회 소속 작가들. 왼쪽부터 페트리샤 파야, 안토닌 그레이스, 글쓴이 수니아, 모리스 팔리스.
 
아리랑-한국의집갤러리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아리랑, 한국의 집’ 갤러리.

나는 이 이야기를 대구사람들에게 반드시 전해주고 싶었다.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딘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사람들의 문화충격담을 꼭 전해야 한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이 발동 했다고나 할까.

나의 타향살이 경력이 어언 25년, 이제는 불어로 글쓰기가 더 수월하고, 프랑스 문화가 내 것처럼 익숙해졌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볼을 갖다대며 비즈를 하고, 한국말을 할 때 조차도 말끝마다 ‘올라라’가 기계적으로 불어로 나온다. 고국에 올 때마다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풍습과 생활양식, 그리고 이해할수 없는 신조어들 때문에 어리둥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내게 이국적인 곳이 되었다.

대구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이 내가 운영하는 클레르몽페랑의 ‘아리랑, 한국의 집’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게 되면서 정태경, 이우석 화백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5년 전부터 레지던시 한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프랑스 작가가 지난해 12월에 대구로 와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는 4월에는 대구 작가들이 내가 운영하는 갤러리가 위치한 클레르몽페랑 거리에서 축제마당을 펼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된다.

프랑스 화가들이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대구로 와서 열흘간 머물며 느낀 문화 충격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빨리빨리 묵고 나가자!’ 로 시작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첫 번째 충격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최소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식사 시간이 대구에서는 10분에서 20분으로 줄었으니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은 쉽게 짐작 하시리라 믿는다. 겨우 국수 몇 가닥을 먹었을 뿐인데 앞에 앉으신 한국 분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계시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으리라.

“다 묵었나?”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요”

“빨리 묵으라”

“올랄라”는 이런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다. “올랄라!”

대구에 도착한지 이틀 만에 프랑스 인터넷 사이트에서 추천한 관광명소인 서문시장을 찾았다. 그 곳에서 시장 음식 체험을 하기로 했다. 장소는 텔레비젼에 나왔다는 한 호떡가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돈을 지불하려 하자 호떡을 빚으시던 아주머니께서 옆에 있는 두 개의 빨간 플라스틱 통을 힐끔 보시며 말씀하셨다.

“여기 바께쓰에 알아서 넣고 거스름돈 찾아가세요”

한 개는 돈을 집어넣는 통, 한 개는 거스름돈을 집어가는 곳인 듯 싶었다.

순간적으로 방황에 빠진 내 모습을 보자 아주머니께서 죄송함과 동시에 웃음이 섞인 표정으로 덧붙이셨다.

“내 손에 기름이 묻어서~”

한국사람들은 모르는 남에게 돈 통을 맡길 정도로 정직하단 말인가? 이것은 프랑스 친구들이 경험한 두 번째 문화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컴퓨터나 핸드폰을 카페 테이블에 놓고 화장실을 가더라도 아무도 훔치거나 손을 대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올랄라!”

나는 이제 프랑스 친구들이 겪은 가장 큰 문화충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른 작고 소소한 차이로 인해 발생한 쇼크도 적지 않았다. 때로는 부정적이고 때로는 긍적적이고. 때로는 의아하고 때로는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여러 형태의 차이점들이 어떻게 보면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랑스 친구들이 대구에서 만난 화가들과 함께 경험한 쇼크는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고 한다. 그게 과연 무엇일까? 여러분의 궁금증을 이제 풀어드려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情) 문화였다. 불어로 한국의 한(恨) 문화를 번역할 수 없듯이 정(情) 문화 역시 직역이 불가능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우리의 정, 그 마력에 한 번 사로 잡히면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 같은 중독성을 지닌 정. 그 함정에 빠진 프랑스 친구들이 처음 던진 말은 이랬다.

“음, 한국사람들은 무언가 우리를 묶어버리는 것 같아. 왜 그러지? 친절이나 호감의 표시 같기도 한데, 결코 그것 만은 아냐. 이상하게 포로가 되어버린단 말이지.”

“그래, 좀 놀라워. 그런데 아주 따듯해.”

“이건 프랑스에서 상상하지 못한 반전이야. 여기에 직접 와 봐야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감정의 경험이지.”

어느 조각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점심 초대까지 받아 대구에서 소문난 맛있는 국수집을 가는 길에 우연히 조각가분의 친구를 만났다.

“어! 밥 묵으러 가자!”

그게 그들이 나누는 인사의 시작이자 끝이었는데, 프랑스 친구들에게는 낯설다 못해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 해도 절대로 밥 먹으러 가자는 인사말을 쓰지 않는다. “안녕, 잘 지내니”, “응, 그래, 내가 언제 초대할께” 등등으로 시작해서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야만 레스토랑에도 같이 갈 수 있고, 집에서도 식사를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부모 자식이나 형제같은 가족 사이에서도 이 관례는 예의의 기본으로 지켜지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프랑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핵 폭발을 이해하셨으리라 짐작이 된다. 게다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길에서 만난 친구분은 식사 값 계산을 하기 위해 우리를 따라 나섰다고 했다.

자동차 안에서 한 화가가 몸이 불편한 프랑스 화가 모리스의 어깨를 감싸 안고 한 말은 두고두고 모리스의 마음을 적셨다고 한다.

“걱정마라. 대구에 내 의사친구들 많다. 너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서 수술시켜준다.”

처음에는 수줍어서 건배할 때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않던 사람들이, 일단 친구가 되자 가족보다도 더 진한 애정을 서슴없이 표현해주는 것이었다. (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건배할 때 눈을 안 마주치면 7년 동안 노섹스라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 술잔을 부딪칠 때는 눈을 꼭 마주쳐야한다. )

끈끈한 정은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느낄 수 있었다. 김광석 거리에서 만난 따뜻한 식당 할머니, 어느 갤러리에서 만난 풋풋한 마음의 관장님, 프랑스에 와서 훌륭한 전시를 하고 돌아온 어느 화가의 정성 깊은 식사대접, 프랑스에 와서 레지던시를 하신 화가님들의 진심어린 배려를 비롯해서, 프랑스 친구들이 받은 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정체로 다가왔다. 이 외에도 나열하지 않은 예들이 수없이 많다. 과연 대구인심에 국한된 것일까?

프랑스사람들은 예의바르고 정직하지만 카르테지안이다. 다시 말해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는 절대로 믿지않고 인간관계에서도 아주 냉철하다. 그러다보니 고독에 익숙해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산다. 그러니 대구에서 받은 정이라는 것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 클래르몽페랑 친구들이 한국여행소식을 물을 때마다 그들이 하는 대답이다.

“올랄라, 난 묶였어!”

※ 글쓴이 수니아는 재불화가이자 시인이며 가수다.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서 ‘아리랑, 한국의 집’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올해부터 대구현대미술가협회와 교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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