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꾸미기 좋아하는 제조업체 대표, 갤러리스트로 대변신
공간 꾸미기 좋아하는 제조업체 대표, 갤러리스트로 대변신
  • 황인옥
  • 승인 2020.0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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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철 갤러리 오모크 대표
컬렉터 활동한지 4년…미술관 다니고 작가에 조언 받아
지난해 7월 아트샵·라운지 등 구성된 복합문화공간 개관
대구현미협초대전 등 2021년 일정까지 만반의 준비 마쳐
작품 판매 수익과 별개로 작가에 ‘최소한의 작업비’ 지급
“사업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고 갤러리 운영 매진 계획”
정희철 갤러리 오모크 대표
정희철 갤러리 오모크 대표는 “작가와 컬렉터를 매개하고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는 좋은 갤러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각오를 비쳤다.

입버릇처럼 ‘행복’을 외치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죽음 직전에서야 살아생전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잘 살았다” 자족할 수 있겠지만, 열정 펄펄 끊는 산 사람에게 찰나적인 행복이 성에 찰리가 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남은 많은 시간들이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희철 갤러리 오모크 대표도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가장 많이 쏟아낸 단어들이 “행복”이었다.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꾸리고 관람객들을 만나면서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는 것. 경북 칠곡 다부동 유학산 자락에 위치한 갤러리 오모크는 지난해 7월에 개관했다. 그의 부인인 최은미 실장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갤러리 오모크는 1층 주차장과 2층 갤러리, 3층 카페 및 아트샵, 4층 라운지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은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3층 아트샵은 고미술이나 시화 전시장으로 차별 운영하고 있다. 전시공간은 평면회화,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를 소개한다. “갤러리 선제 대표님이 ‘공간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하셔서 뜻하지 않게 갤러리를 운영하게 됐어요.”

예상치 못한 길에서 의외의 순간과 마주할 때 ‘운명론’을 들먹인다. 부지불식간에 인생의 수레바퀴를 180도 돌리는 순간이 그런 때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소수에게만 허락되지만 그렇다고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 모든 기회가 은총일 수는 없어서 어떤 경우에는 재앙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에게도 미술과의 인연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불과 3~4년 전으로 시계 바늘을 되돌려도 그가 갤러리 운영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가 “미술이 내게는 은총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미술과 인연을 맺으면서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어요. 제조업을 할 때와는 다른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갤러리와 카페를 겸하거나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병행하는 복합문화공간 형식의 갤러리들이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 대개 컬렉터로 시작해 갤러리 운영으로 이어진 경우들이다. 정 대표도 그런 케이스다. 갤러리 개관 이전에 컬렉터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4년여 전의 일인데, 지금까지 소장한 작품이 어림잡아 80여점이 넘는다. 짧은 기간 동안 보유한 작품 수에 비해 작품을 소장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집안 인테리어에 취미를 붙이면서 그림으로까지 관심을 확장한 것. “집이나 사무실을 꾸미기를 좋아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꾸미는 과정에 미술 작품을 만났어요.”

소장품의 양과 질은 비례하지 않는다. 작품 수집 기준이 ‘공간을 꾸미는 용도’에 맞춰졌고, 그림 보는 안목도 높지 않아 수집품의 작품성은 한계점을 노출했다. 전문성을 가지고 작품 구입에 나선 기간은 1년 정도됐다. 고향 선배 작가를 만나면서 그림에 대한 조언도 구하고 이론적인 공부도 병행하면서 무게감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컬렉션하기 시작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다양하게 보러 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식견을 넓혀갔어요. 고향 선·후배 작가들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죠.”

정 대표는 갤러리스트 이전에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CEO다. 그는 각종 비닐제품을 생산하는‘보름달’을 이끌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너 나할 것 없이 “힘들다”고 아우성일 때 그의 사업체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인터넷 쇼핑몰 운영을 위한 기반을 확충하고 올해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컬렉터를 거쳐 갤러리 운영자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에 제조업이라는 수익창출원이 있었다. 한창 사업체 운영에 재미를 붙일 시기인데 그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벌려놓은 사업들을 단계적으로 시스템화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저는 뒤로 물러나 갤러리 운영에만 매진할 계획”이라고.

수익창출의 기반인 제조업과 정서적인 만족도가 높은 갤러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돈과 예술이라는 가치지향으로 좁혀진다. 수익에 대한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조업의 손을 잡거나, 배는 고플 수 있을지언정 고품격 자아실현에 무게감이 실리는 예술편에 서거나, 둘 중 하나다. 정 대표는 “후자편에 서겠다”고 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작가들을 만나 예술을 논하고, 관람객들과 예술을 함께 공유하는 이 상황이 제게는 너무나 새로운 세계처럼 다가왔어요. 제조업을 하면서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감정들이며, 미술과 관련된 모든 상황들에서 행복감을 느껴요.”

‘행복’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정 대표. 그가 미술을 향한 관심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짐작케 하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컬렉터로 활동하면서 소장한 작품들을 지인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해 함께 즐기도록 하고 있다는 것. “저 혼자만 행복하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로 행복감을 느끼길 바랬죠.” 지난해 7월에 개관한 갤러리 오모크는 최용대 작가를 개관전으로 지난 6개월간 한국화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 신영호와 나무조각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조작가 김성수 초대전을 이어왔다. 올해는 김결수, 최영관, 이영철, 왕열, 강병인 등의 전시가, 내년에는 대구현미협초대전, 임종두, 조선희 사진작가, 권기철 등의 초대전이 예정돼 있다.

갤러리 개관 이후의 출발은 순조롭다. 갤러리 선제가 쌓아놓은 지명도와 다부IC 근처라는 접근성이 맞물려 개관 후 6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이지만 관람객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갤러리 운영을 위한 수익창출 구조 확충은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다. 컬렉터로 활동할 때는 좋은 작품에 비용을 지불하고 소장하는 개인적인 행위로 국한되었지만 갤러리를 운영하는 지금은 전시와 함께 작품 판매도 병행하며 수익 창출도 해야하는데 아직은 컬렉터 개발 등에서 준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가 “작품 판매와 관련된 부분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컬렉터 개발을 장기적인 비전으로 두고 단계적으로 추진해 가겠다는 것. 작품 판매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기 이전까지는 작가지원금 제도라는 보완책을 구사하고 있다. 초대전에 참여하는 작가에게 작품 판매와 별개로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가 “최소한의 작업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며 “향후 지원금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은 제조업 운영에서 생기는 수익으로 갤러리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고 향후 갤러리도 작품 판매와 3층 아트샵 공간 대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에요.“

미래사회는 수명연장으로 직업에 종사하는 기간이 길고, 사회변화가 빨라 평생 직업이나 직장 개념은 희미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정 대표는 시대를 앞서간 케이스다. 다양한 직종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만의 장점으로 한 단계씩 성장해왔다. 젊은 시절에는 농기계 부품업종에 종사했다. 그러다 선배의 권유로 비닐제조업체에 몸을 담는가 싶더니 이내 독립해서 사업체를 설립해 단기간에 궤도에 올려놓았다. 지금은 갤러리스트에까지 도전장을 던졌다

태생적으로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기질’은 타고났다. 지금까지 “할 수 있겠다”는 확신만 서면 분야를 초월해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직진본능마저 포착되는 그의 도전들에는 특유의 ‘성실함’과 ‘자신감’이 깔려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만 살면 어떤 일을 하든 큰 실패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었다. “성격이 긍정적이고 성실해서 어떤 일을 하든 시간이 지나면 신뢰를 받았어요. 그 신뢰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죠.”

그가 “갤러리와 제조업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비록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정직한 노력 앞에 장사 없다”는 취지였다. 사실 그가 모든 일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속내는 따로 있다. 그에게는 ‘사람 좋아’하고 ‘나눔과 배품’을 행복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내공이 있다. 덜컥 갤러리를 개관한 것도 그가 가진 유·무형의 자산들이 기반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었다. 개관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만난 그의 얼굴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작가들과 함께 미술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는 자부심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부담감을 억누르게 한다”며 미소를 날렸다.

갤러리 오모크는 철저하게 작가 중심을 표방한다. 그가 “갤러리스트로서의 삶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며 “나쁜 갤러리스트는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특히 “작가와 컬렉터를 매개하고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는 좋은 갤러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각오를 비쳤다.

작가 존중과 함께 관람객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좋은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품격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갤러리의 문턱을 낮추는데 역량을 쏟겠다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 공간에서 미술을 벗 삼아 힐링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갤러리 오모크는 현재 소장품전을 진행 중이다. 1부 ‘붓끝마다 고독해야하는 작가들’전에 이어 현재 2부 ‘그러나, 특별하지 않은 그림’전이 진행 중이다. 소장품전에는 곽훈 권기철 권무형 김결수 김병호 김상구 김성수 김종복 김종언 리아 사석원 사쿠라코 하마구치 석용진 신영호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염성순 왕열 윤원근 이두식 이상열 이정웅 정관훈 정점식 정태경 최용대 홍승혜 등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2월 26일까지. 054-971-885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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