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사각지대
인지의 사각지대
  • 승인 2020.01.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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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자동차 사고는 초보일 때보다는 ‘운전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 때쯤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처음 운전을 하던 시절에는 자동차라는 것이 페달만 밟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면 마치 레이싱 선수라도 된 듯이 속도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운전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때쯤 크게 사고가 날 뻔했던 적이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고는 방심할 때 일어난다. 긴장하고 주의할 때는 사고가 없다가 이제는 익숙하다 싶어서 방심하고 조심을 덜 할 때 사고는 발생하는 법이다.

처음부터 도로 위를 달리는 주행은 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교만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앞차를 추월하려고 차선을 바꾸다가 사각지대에 있던 차와 부딪혀 사고가 날 뻔했던 것이다. 초보운전 때다 보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다가 처음으로 사각지대에 있던 차와 부딪힐 수 있었던 상황을 경험하고는 사각지대라는 것이 정말 위험한 곳이란 것을 인지하게 됐다. 분명 나의 시야에는 옆 차선에 있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차선을 변경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차가 경적을 크게 울렸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백미러(rearview mirror) 위에 사각지대를 비춰주는 보조 거울을 양쪽에 모두 달았고, 룸 미러도 큰 것으로 장착을 했다.

요즘 출시되는 자동차에는 차선 변경을 할 때 사각지대에 차가 있으면 알림을 해주는 기능들이 옵션으로 선택된다. 더 나아가 사각지대에 차가 있으면 차선 변경 자체가 안 되도록 설정된 차들도 있다. 그리고 후진을 할 때 후방에 물체가 있으면 알려주는 센서, 또는 후방 카메라 등도 모두 사각지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사각지대는 자동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지(認知)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인데도 나의 인지 구조상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고 인지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 듣고도 듣지 못하’는 것, 실제로 옆에 있는데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인지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속담에도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얼마 전에 본인도 인지의 사각지대를 경험했다. 주차를 하다가 주차된 다른 차를 박았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정신이 어디에 팔려 있었는지 다른 차를 인지하지 못했다. 좌측 후방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을 한 상태에서 후진을 하다가 좌측에 있는 트럭에 나의 차가 크게 긁혀 버렸다. 트럭은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고 나의 차는 수리비가 25만원이 나왔다. 돈도 돈이지만 그때 개인적으로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만약 그 곳에 차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면. 생각 만해도 아찔하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한다. 자동차에만 사각지대를 알려주는 보조 거울, 알림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인지의 사각지대를 알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친구가 그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 혹은 멘토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주위에 가까이 두어야 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가 인식하고 있는 그 물체와 그 상황들을 설명해줬을 때 받아들여야 된다. 자동차에 후방 센서 소리가 날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집 피우고 그대로 후진을 한다든지 좌회전을 하다가는 사고가 발생한다. 나의 인지의 사각지대를 누군가가 알려줬을 때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느끼고 내가 본 그대로만 세상을 인식한다면 정말 위험한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지의 사각지대’는 실제로 존재한다. 단지 내가 인지 못했다고 실제로 그 일이, 그 사람이, 그 상황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인지의 사각지대를 인정하고 우리들의 그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도록 하자. 잔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경고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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