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오고 간다 - 원병오 박사의 사부곡
새는 오고 간다 - 원병오 박사의 사부곡
  • 승인 2020.01.23 2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원병오(元炳旿 1929. 5. 19.~ ) 박사는 대한민국의 조류학자입니다. 원병오 박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 동화책 등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그가 유명한 조류학자이기도 하지만 이산가족이라는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어서 더욱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는 광복 이전 한국 유일의 조류연구가였던 원홍구 박사의 4남 2녀 중 막내로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에 아버지를 따라 새를 관찰한 덕분에 성장해서도 조류(鳥類) 연구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1948년 김일성대학 농학부 축산과에 입학하였으나, 단과대학으로 분리된 원산농업대학을 다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월남하였습니다. 전쟁 기간 육군 포병장교로 참전하였으며, 중위 때에 당시 3군단 포병단장이었던 박정희 대령의 전속부관을 지냈습니다. 전역 후 경희대학교 생물학과를 거쳐, 1961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아버지 원홍구와는 한국전쟁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가 1965년 자신이 인식표를 단 북방쇠찌르레기를 북쪽의 아버지가 발견한 것을 계기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원병오는 폴란드의 조류학자 얀 피노프스키와 소련의 조류학자 레오니드 포르텐코의 도움으로 몰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분단 때문에 둘이 직접 만나는 일은 성사되지 못했고, 2002년에야 그는 개성에 있는 아버지의 묘에 성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부자(父子)가 지척에 있으면서도 남북이 가로막혀 오고갈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북한에서도 이러한 원병오 박사의 사연을 알고 ‘새’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김세륜 시나리오, 림창범 감독으로 199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북한의 작가 림종상이 1990년 실화를 바탕으로 ‘조선문학’3월호에 발표한 소설 ‘쇠찌르러기’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쇠찌르레기’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쇠찌르러기’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북한의 원로 조류학자인 윤박사는 새 서식지를 관찰하러 갔다가 어느 마을의 작업반장으로부터 쇠찌르레기의 이상한 동태를 발견했다는 전보를 받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쇠찌르레기의 발목에는 낯선 인식표가 달려있었습니다.

윤박사는 전쟁에서 큰아들을 잃고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윤박사의 둘째 아들 명오는 어려서부터 새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는데, 어느 날 쇠찌르레기를 관찰하러 남한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해 이산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남한에서 유명한 조류학자가 된 윤명오는 연구 도중에 남한에서는 사라진 새들이 북한에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새의 발목에 인식표를 붙여 북한으로 날려 보내고, 이 새들의 경로 추적을 일본학자에게도 도움을 청합니다.

마침내 아버지 윤박사는 쇠찌르레기를 관찰하던 도중 새의 발목에 달린 인식표가 남한에 있는 자신의 아들이 달아 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에 일본연구소의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아버지 윤박사와 명오는 짧은 상봉을 하지만 결국은 헤어져 돌아갑니다. 다시 학술대회가 열리자 병석에 누운 윤박사는 아들 명오를 만나기 위해 기어이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손자가 할아버지와 삼촌을 연결해주는 구조로 되어있으나,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로 압축하여 두 인물에게 집중하도록 수정되었다고 합니다.

원작(原作)인 림종상 소설의 결말부가 남한에 있는 윤박사의 아들이 언젠가는 북으로 올 것이라는 암시와 기대를 한데 비해, 영화에서는 남북 이산가족이 다른 통로를 통해서라도 만난다는 설정으로 끝내고 있어 남북교류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를 다소 다른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이데올로기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새를 통해 인간의 분단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북한의 새 소식을 접할 때마다 민족의 아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