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주인의 삶을 살 것인가, 머슴의 삶을 살 것인가
[금요칼럼] 주인의 삶을 살 것인가, 머슴의 삶을 살 것인가
  • 승인 2020.01.2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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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식
대구공업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많은 사람들은 흔히,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머슴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얘기한다. 주인정신을 강조하는 말이다. 물론 요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머슴이란 용어가 낯설겠지만 머슴이란,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에 얹혀 살며 주인이 시키는 대로 집안 청소나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살아오신 필자의 아버지와 쌍둥이 형인 큰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필자의 조부는 아버지(필자의 증조부)가 마을의 훈장인 집안에서 외동으로 귀하게 태어난 분이었지만, 어린 시절 공부를 하지 않아 일자무식이 되었다고 한다. 결혼 후, 고향마을이 댐 공사로 수몰되는 바람에 전답을 팔아 식솔들을 데리고 이웃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무식이 원인인지 친구에게 땅 사기를 당하여 하루아침에 재산을 모두 잃고 온 식구가 먹고 살기가 어려운 처지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당시, 필자 아버지의 나이는 15세로 형과 쌍둥이라서 얼굴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똑 같은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아들과 딸, 장남과 차남 등을 구분하지 않는다지만 과거에는 장남제일주의의 시대였던지라 쌍둥이 형만 초등학교에 보내주고 동생은 일만 시켰다고 한다. 또한,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초등학교 졸업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수재였던 필자의 큰아버지 역시, 중학교는 가지 못하고 농사일만 하게 되었으며 17세가 되던 해에는 큰 흉년까지 들어 먹고 살기가 더욱 어려워, 할 수 없이 필자의 할아버지가 쌍둥이 아들 둘을 이웃마을의 부잣집에 머슴으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필자의 형제들이 아버지로부터 가슴 아프게 듣던 이야기 중 하나이다.“머슴으로 들어간 첫날, 주인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고 해 둘이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산 아래에서 누가 지게를 지고 나무 하러 올라오더라. 자세히 보니 너희 할아버지였는데 더 놀란 것이, 한 어린 애가 할아버지 지게 작대기를 앞으로 댕겼다가 뒤로 댕겼다가 하면서 놀리고 있더라.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애를 야단도 치지 못하고 그냥 참으면서 몸을 앞으로 뒤로 기우뚱거리면서 올라오고 있는 데, 그 못된 애가 누구냐 하니까 바로 우리 형제를 머슴으로 삼아 준 부자집 아들이었던 거라. 할아버지는 그 애를 혼내면 혹시 우리가 그 집에서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쫓겨날까 두려운 생각에 수모를 참고 참으며 올라오고 있었던 거겠지.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던 우리는 얼마나 울분이 터지던지, 결국 참지 못하고 단번에 지게 작대기를 부러뜨려 버리고 달려가 그 애를 작살나게 패버리고는 산으로 도망을 가버렸단다. 일제 강점기 그 당시에는 일본 순사들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우리 형제는 3일 동안 산에서 숨어 지내다가 새벽에 몰래 집으로 돌아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무릎을 꿇고, ‘아버지! 어머니! 저희들 떠나겠습니다. 일본으로 가겠습니다. 가서 돈 벌어 올테니까 제발 그때까지 살아만 계십시오. 어린 동생들과 가족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반드시 저희들이 돈 벌어 오겠습니다.’ 하고는 눈물을 머금고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실었단다”

필자는 매년 학생들을 데리고 본교와 협약한 일본의 선진 복지시설을 견학하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데 그럴 때 마다 늦은 밤 혼자 배의 갑판에 서서, 수십 년 전 좁은 배안에서 혹시 남에게 들킬까봐 숨을 죽이며 밀항선에 몸을 실었을 17세의 어린 두 형제,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으로 그 어린 나이에 남의 집 머슴 생활과 일본 순사에게 겨 어떨 수 없이 밀항선에 몸을 실어야만 했던 그 불쌍한 형제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수없이 스쳐가는 삶과 죽음의 공포 속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흐르면서, 나 또한 무언의 다짐을 하고는 했다.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이제 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결코,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주인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제자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고 장군의 길을 가겠습니다. 한번 지켜봐 주십시요!’라고...

필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걸으며,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살아오셨던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아버지는 늘 “내 인생에서 머슴의 삶은 단 하루였다. 나머지 삶은 주인으로 살아왔다. 너도 결코 머슴이 되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라고 말씀 하셨다.

인생에는 늘 두 가지의 선택이 있다. 결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며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늘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남을 의식하며 머슴처럼 소심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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