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
명절 선물
  • 승인 2020.01.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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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 박사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지 않아도 수십 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분들이 있다. 덕담 한마디 혹은 문자 한통이라도 충분하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서로 선물을 주고받게 되는 분들이 있다.

이번 설 명절에도 여전히 그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매번 보내는 선물보다 받는 선물이 훨씬 좋은 것이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풀어보며 아내와 함께 세 번 정도의 감탄을 하곤 한다.

‘햐..포장지가 예술이네’ 라는 감탄사는 ‘야..정말 맛있게 보인다’로 이어지고 ‘이런 선물은 꽤 비쌀 텐데’라는 속물스런 감탄사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우리가 보내는 선물은 그렇지 못하다. 아내와 함께 제법 고민하며 이런 저런 선물을 고르기는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가격을 상한선으로 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탄사에는 그런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담겨 있다.

심지어 우리의 평범한 선물을 더 부끄럽게 하시는 분들에게는 심지어 가끔 선물을 거르기까지 한다. ‘보내주신 선물이 너무 과분합니다. 저희가 매번 보내 주시는 선물에 걸맞게 할 형편이 못됨을 양해바랍니다. 보내주신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의 결례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 분이라면 이런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틈틈이 실례를 하곤 한다.

그래도 미안함이 남아 있거나 고마움이 밀려오면 보내온 선물을 사진으로 찍어 감사 표시를 하거나 전화로 인사를 드리기도 한다. 조금 염치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미안함을 덜게 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명절 선물을 보내주신 어떤 분과 전화 통화를 했다. 우리도 선물을 보내었으니 그것으로 인사를 대신할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전화 인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통화를 한 후에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져서 ‘전화를 참 잘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하니 그 분이 먼저 우리가 보낸 선물에 대해 감사인사를 한다. 우리가 보낸 선물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있게 먹고 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인사가 진솔하게 느껴져 마치 정말 우리가 대단한 선물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고마운 분들이다. 그 분들 덕분에 더 행복한 명절이 되었다.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정성이 있는 선물은 더 풍성한 명절이 되게 한다. 이번 명절에도 받은 선물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그 분들의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절에 선물이 없어도 좋긴 하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지인들과 함께 하는 명절이 훨씬 더 좋다.

그런데 사실, 주고받는 선물보다 더 기쁠 때는 내가 일방적인 선물을 할 때이다. 그 대상은 병이나 사고 혹은 긴급한 일로 인하여 경제적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분들이다.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고 긴급한 수술을 해야 하는 지인의 가족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그 분에게 ‘그렇지 않아도 구정 선물을 할까 했는데 현금으로 드린다.’며 계좌번호를 물어서 송금을 했다. 미안해하며 고마워하는 그의 말과 얼굴 속에 내가 읽혀졌다. 과분한 선물에 나도 그처럼 미안해하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작은 선물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그 분은 내게 아무 것도 보답할 수 없어서 더 미안해한다.

어색해 하는 그를 보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덕분에 나도 다른 분에게서 더 나은 선물을 좀 덜 미안해하면서 받을 수 있답니다.’ 저녁이 되고 다음 날이 되어도 그에게서 더 이상의 감사의 말이나 문자는 없었다. 그러나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섭섭할 여지가 없게 다른 지인이 내게 과분한 선물을 보내 온 것이다.

명절에는 보답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분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선물을 핑계 삼아 주고받는 손이 덜 부끄러워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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