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변이로 구축된 새로운 생태계
변화와 변이로 구축된 새로운 생태계
  • 황인옥
  • 승인 2020.01.2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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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강주리展’
유기적 관계의 자연과 인간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양상
거대한 입체 덩어리로 구현
자연파괴·복제 등 현대 이슈
여러 관점 해석 여지 열어둬
봉산문화회관-유리상자-강주리2
강주리 전시작.

우주를 떠도는 작은 유성체나 오래된 동굴 속 종류석의 형태를 닮은 크고 작은 입체 덩어리 8개가 천장에 매달리거나 바닥에 설치돼 있다. 멀리서보면 거대한 운석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동·식물을 모아놓은 집합체다. 고양이, 돼지, 도마뱀, 거북이, 다양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이름 모를 식 70여 개체가 얽히고설켜있다. 작가 강주리가 4면이 유리로 마감된 전시공간인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 구현한 설치작품인데 작가가 “‘변이와 진화’의 대상과 상황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변화를 위한 한껏 움츠리고 있는 형상”이라고 했다. “개체들이 모여 유기체가 된 하나의 새로운 생태계죠.”

작가가 탐구하는 대상은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다. 정확히는 생물과 비생물적 환경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변화와 변이를 반복하는 생태계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 생태계의 모습도 순수함과는 결을 달리 한다. 고양이, 돼지, 도마뱀, 거북이, 다양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이름 모를 식물들에서 유전자 변이가 진행되기도 하고, 멸종위기의 동·식물들도 채집되어 있다. “인간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생태계의 모습이에요.”

사실 작가에게 자연이 친근한 대상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도심에서 나고 자란 탓에 애써 찾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물리적인 거리가 심리적인 무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런 그가 작업의 소재로 자연을 취했다면 정서적인 면보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작가가 “매체를 통해 자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했다”며 짐작하는 바에 신빙성을 더했다.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쓰레기나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복제 또는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질병을 치료하는 바이오 테크놀로지로부터 파생되는 돌연변이, 자연파괴로 인한 환경문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자연에 대한 정보들이 작가의 귀와 눈을 자극했다.

“나는 자연에 대해 무관심 했지만 다양한 매체들에게 다뤄지는 자연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이슈였어요.”

작업의 기반은 드로잉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반영하는 생태계의 이미지를 인터넷이나 자연사박물관, 과학 잡지 등에서 찾아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펜을 이용해 짧은 선들의 집합체 형태로 드로잉한다. 그런 후에 드로잉 수십 개를 스캔한 다음 일그러트리기 등의 이미지 조작을 가한다. 이 이미지들을 프린트하고, 오리고,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거대한 설치로 완성된다.

작업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이미지 찾기→드로잉으로 변환→스캔→변형→반복적 인쇄→오리기→붙이기 등 꽤나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그때마다 많은 시간과 노동을 요구한다. 작가는 “창조를 위한 과정에 노동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노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신 다양한 개체들이 모여 새로운 유기체가 되어가는 과정 전체에 의미를 두고 싶어했다. “완성체라는 결과물보다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핵심에 두고 있어요.”

인간의 세계관은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르지 않다. 작가 역시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생태계를 인간의 시각에서 다루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생태계를 바라보려는 태도를 취하며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가 만든 생태계에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가 “문화화 된 자연”에 대해 언급했다. “내게 자연은 경외심을 불러오는 이상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돌연변이나 쓰레기 등의 변화와 변이가 진행된 대상이기도 해요. 저는 두 관점 다를 바라봅니다.”

생태계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되, 분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들을 ‘모두가 옳다’거나 ‘모두가 옳지 않다’라는 단정적인 시각은 지양하는 것. 대신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 환경의 다양한 양상”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 “자연은 인간이나 환경과의 관계맺음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또 변화해 왔어요.”

작가가 바라보는 생태계의 변형과 변이는 참담하다. 일그러지고 변형되어 있다. 그렇지만 순수했던 자연으로의 회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정치와 사회,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읽혀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자각하는데 몰두한다. 판단과 행동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 희망과 비관이 교차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왔다.

작가가 “동·식물 생태계를 보여주고 거꾸로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가?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예술이 세상과 나를 이해하는 창 역할을 하기를 바래요.”

이번 전시에는 4면이 통유리인 봉산문화회관 전시장 특성을 고려해 수많은 드로잉을 집합한 설치작품을 구현했지만 이전 작업에서는 반입체 드로잉 작업도 병행해 왔다. 그가 “드로잉 작품은 읽혔으면 좋겠고, 설치 작품은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서 3월22일까지. 053-661-35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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