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비우면
그릇이 된다
비우면 비울수록 큰
그릇이 된다
밤낮 포개지고 뒤척이며 채우고 비우는 반복
그 선에 오른 것 중
금 안 가고 이 빠지지 않은 것
세상 어디 있으랴마는
그릇은
드러나는 바닥을 보면서도
단 한 번 단 한 순간도 번민하지 않는다
차지 않은 만큼 비움 그득하기에
비우려 채우는 무엇이든
그릇이 될 수 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그릇이 될 수 있다
◇권순학=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제어계측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공업대학에서 시스템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바탕화면’, ‘오래된 오늘’과 ‘그들의 집’이 있고 저서로 ‘수치해석기초’가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기계IT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한국시인협회 및 한국지능시스템학회 회원이다.
<해설> 그릇을 빚기 위하여 도공은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수많은 흙 중에서 그릇에 맞을 흙을 찾아 오르고 내리며, 거르고 치대길 수백 번 한다. 도공은 채우면 채울수록 비워지는 그릇에 정감의 눈으로 바라보며, 무늬와 형태, 빛깔을 마음에 담는다. 흘러가는 아침 점심 저녁 설거지하는 도공의 아내는 비워진 그릇을 보며 흐뭇해한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기에…. 하나의 그릇을 빚는 과정을 일렬요목하게 묘사하는 시인의 맑은 눈에 찬사를 보낸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