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
남 탓
  • 승인 2020.02.05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내 탓이오.” 한 때 내 탓이오 라는 문장이 캠페인처럼 사람들 사이에 번져 나간 적이 있었다. 참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네 탓이오.”하고 있다. 이것 역시 무슨 캠페인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내 탓이오 라고 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남편은 아내 탓이라 하고, 아내는 남편 탓이라 한다. 노인은 젊은이 탓이라 하고, 젊은이는 노인 탓이라 한다. 모두 탓하기 바쁘다. 마치 탁구 경기 같다. 장사 안 되는 것도, 경제가 어려운 것도 누군가를 탓해야 속이 편한 지경이 되었다. 이미 세상은 탓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두 탓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일 것이다. 탓하면 책임이 내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으니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고 또한 그 일이 잘 못되어도 구경꾼처럼 한 발 슬쩍 뺄 수도 있으니.

상담할 때든 아니면 그냥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세한탄의 대부분의 시간은 남 탓하기에 할애한다. 그럴 때 그 사람들이 늘 나에게 하는 공통된 말이 하나 있다. 그 말은 “당신은 왜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라는 말이다. 속된 말로 왜 같이 그 사람을 욕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말하는 사람과 한 편이 되어 대화 속에 등장하는 지금 자리에 없는 그 사람을 함께 욕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한편이 되어 같이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먼저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 그 상대방을 잘 모른다. 알아도 말하고 있는 지금 앞의 사람보다는 잘 모른다. 그래서 섣불리 그를 욕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그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남에 대한 이야기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린다. 지금 주장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그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3자를 욕하며 탓하는 사람과 앉아있으면 접근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말하는 사람과 한 편이 되어 같이 욕을 하든지, 아니면 네가 틀렸다고 말하며 앞에 앉은 사람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든지. 편의상 나의 앞에서 상대를 탓했던 사람을 A라고 하고, A가 탓하는 그 사람을 B라고 하겠다. 먼저 A와 한 편이 되어서 같이 욕을 하면 나의 마음에도 자리에 없는 B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이 생긴다. 욕하고 잊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느새 나의 마음에 B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게 되고 미운 감정이 전염병처럼 내게 옮겨진다. 문제는 나에게 생긴 B에 대한 감정을 해소할 방법이나 기회가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B를 욕했던 A는 해소할 기회가 있다. 어느 날 보면 둘(A와 B)의 관계는 회복되어 있고 함께 편들고 욕을 했던 나의 마음에만 미움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참 우스운 상황이 연출된다. 다음으로 A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어 놓게 되면 A와 나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자리에 없는 3자를 욕하는 것은 나와 A를 위해서도, 또한 나와 B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남 탓을 할 때 살짝 시원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상처 부위에 손을 대고 긁는 행위와 같다.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가려워도 손을 대지 말고 가만히 두어야 하는데 상처 부위를 긁으면 잠시는 시원할지 모르나 상처는 2차 감염으로 더 덧나게 된다.

남 탓하지 말고 내 탓이라 해보자. 그러면 잠시는 답답할지 모르나 결과가 좋다. 그가 아프게 했다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아프다’라고 말해보자. 그러면 그에게 열쇠가 있지 않고 내게 열쇠가 있다. 좋아지는 것도 나고, 행복해지는 것도 나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