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밟은 게 돌 아닌 개구리라면?
내가 밟은 게 돌 아닌 개구리라면?
  • 황인옥
  • 승인 2020.02.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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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이랑 작품 ‘일상적 해프닝’
“생활 속 삶·죽음이 공존하는 상황
누구나 가해자·피해자 될 수 있어”
곽이랑 작
곽이랑 작.

작가 곽이랑(30)의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최근 1년 동안 제 삶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했던 것 같다”며 “올해도 그랬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두웠던 그림자가 드리웠던 불과 1년 전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큰 사건을 겪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 졌어요. 나를 힘들게 했던 예민한 감정들에 무던해졌고, 스트레스도 줄었죠.”

지금이야 평온해 보이지만 곽이랑의 청춘은 병마로 얼룩졌다. 세상과 제대로 맞장을 떠 보기도 전인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육체와 영혼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청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죽음’까지 떠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순간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경험하지 않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함암치료 후 생기를 회복하자 세상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졌다. 작은 일에도 아웅다웅하던 태도가 조금은 관조적으로 변화한 것. 그 경험이 ‘삶과 죽음’이라는 본질로 향하는 문을 열게 했고, 그때부터 ‘삶과 죽음’이 작품의 주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죽음을 통해 역으로 삶의 의미를 제대로 성찰하는 기회가 됐어요.”

곽이랑이 최근에 개막한 수창청춘맨숀 ‘실재와 가상-그 경계에서’전에 출품한 작품의 주제도 ‘삶과 죽음’이 맞물려 있다. 작품의 제목은 ‘일상적 해프닝(Ordinary Happening’). 개구리 조각 200여개가 전시장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고, 그 중앙에 안경처럼 착용하는 VR(가상현실) 해드셋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흐르는 강물을 촬영한 영상 작품이 돌아가고 있다. 개구리 사이를 관람자가 거닐고, 균형을 잃어 개구리를 밟아 파손해도 무방하도록 허용해 놓았고, VR 해드셋도 착용 가능(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착용은 잠시 중단됨)하다.

개구리 조각 작품에는 예기치 못한 죽음의 상황이 표현되어 있다. 철저하게 개구리의 시각에서 거대한 인간의 발자욱이 언제 자신의 몸을 덮칠지 모르는 공포를 다룬다. 대학원 재학 시절 어느 여름밤에 영남대학교 캠퍼스를 걷다 발바닥으로 무언가를 밟은 듯한 편치 않은 느낌을 작업으로 가져왔다. “돌인지 개구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를 밟았다는 생각에 측은한 감정이 밀려왔어요. 개구리 입장에서는 공포였겠죠.”

돌이켜보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는 일들은 우리 삶에서 비일비재하다.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피해자가 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일들은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무분별하게 사용한 플라스틱 용품들이 지구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거나 길을 걷는 행위에서 땅 위 보이지 않는 생명을 밟는 행위까지 다양하다. “우리 삶이 의도와 상관없이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상 작품에는 작가가 가족과 함께 여행했던 방콕의 어느 강가를 직접 촬영한 이미지가 담겨있다. 이 작품 역시 죽음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거칠게 흐르는 강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우리가 죽으면 돌아갈 곳이 바로 저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VR 해드셋 작품에는 삶과 죽음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이미지로 표현했어요.”

이번 작품에서 일반적인 ‘삶과 죽음’을 다루지만 이전 작품들에서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나 상황을 직접 언급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탐구하던 ‘삶과 죽음’을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예전에는 제가 복용했던 약 가루나 처방전을 통해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의도치 않게 개입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삶과 죽음을 다루려 했어요.”

순환의 고리 속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을 다루는 곽이랑을 비롯한 20여명이 참여하는 수창청춘맨숀 ‘실재와 가상’전은 오는 4월 30일까지. 053-252-2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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