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순수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히틀러 시대
‘조조 래빗’ 순수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히틀러 시대
  • 배수경
  • 승인 2020.02.06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 6개부문 후보작
상상 속 친구 히틀러가 유일한 위안인
겁 많은 꼬마 나치주의자 10살 ‘조조’
인종에 대한 편견·전쟁의 참혹함 등
비극적 시대 따뜻·유쾌하게 풀어내
영상미·음악·배우들 연기력 삼박자

 

조조래빗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는 언제나 그를 지지하며 곁에 머문다.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코미디라고?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의아함이 컸다. 5일 개봉한 영화 ‘조조 래빗’은 여러가지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크리스틴 뢰넨스의 장편소설 ‘갇힌 하늘’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10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비극적인 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유쾌하다.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가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나치 제복을 입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동화 속 한장면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의 손을 잡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를 찍은 영상은 광기어린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조조는 독일 소년단에 들어가 히틀러의 개인 경호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독일 소년단에서는 10살 즈음의 아이들에게 총쏘기나 단검 쓰는 법, 수류탄 던지는 법을 가르치고 토끼의 목을 비틀어 죽이라고 강요한다. 조조는 맹목적으로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지만 실제로는 토끼 한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여린 소년이다. 때문에 그는 ‘조조 래빗’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놀림을 받게 된다.

이런 그의 곁에는 늘 상상 속의 친구가 함께 한다. 그 친구는 조조의 실패를 비웃지 않고 언제나 그를 지지하며 곁에 머문다. 놀랍게도 그 친구는 히틀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히틀러의 모습을 한 친구는 나약한 조조의 또다른 자아일지도 모른다. 어느날, 그는 죽은 누나의 방 벽장에 몰래 숨어사는 유대인 소녀 엘사를 발견한다. 머리에 뿔이 달린 괴물인줄 알았던 유대인과의 대면은 소년을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우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인종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영화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 배우들의 열연까지 어우러져 관객의 호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조조를 연기한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의 연기는 놀랍다. 순수한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저절로 무장해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조조래빗
조조의 엄마 로지 역의 스칼렛 요한슨은 인상깊은 연기로 제 92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나치를 추종하는 아들과 뜻을 달리하고 자유 독일을 꿈꾸지만 아들의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보다는 사랑과 평화에 대해 조용한 가르침을 전해주는 엄마 로지의 연기도 인상깊다. 로지 역의 스칼렛 요한슨은 ‘결혼 이야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이 영화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라있기도 하다.

끔찍한 시대를 판타지로 그려낸 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겠다. 그렇지만 ‘조조 래빗’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유쾌함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웃음 뒤에 가려진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비극적인 상황을 코미디로 그려내면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 한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연출과 함께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우스꽝스러운 히틀러의 등장은 불편한 소재를 다루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보인다. 게슈타포가 등장해 집을 수색하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 반복되는 ‘하일 히틀러’라는 인사 역시 웃음을 선사한다.

‘조조 래빗’은 10살 소년 조조의 성장기이다. 상상 속의 친구와의 우정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참혹한 현실은 끊임없이 조조의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며 그를 혼란에 빠트린다. 어느 순간 그는 상상 속의 친구, 히틀러와 결별을 하며 현실 세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유대인 엘사와의 만남은 조조를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벽장 속에 숨어 지내던 유대인 엘사는 안네 프랭크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안네 프랭크는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엘사는 살아남아 자유로운 공기를 맛보게 된다. 자유로와지면 춤을 추고 싶다던 엘사가 조조와 마주보며 데이빗 보위의 ‘Heroes’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신발끈 하나도 제대로 묶지 못하던 소년이 엄마의 구두를 부여잡고 신발끈을 묶어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가슴 아픈 순간이다. 영화의 말미, 엘사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조조의 모습에서 어느덧 훌쩍 자란 소년을 만날 수 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는 오는 10일 열리는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는 작품상, 편집상, 미술상 3개 부문에서 함께 겨루게 된다.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일어나게 놔둬라. 그냥 나아가라. 어떤 감정도 끝이 아니다.’(Let everything happen to you/ Beauty and Terror/Just keep going/No feeling is final.)라는 릴케의 시구절이 여운을 남긴다.

배수경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