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굿 라이어’ ...가난하고 병든 미래가 남겨진다는 것
[백정우의 줌인아웃] ‘굿 라이어’ ...가난하고 병든 미래가 남겨진다는 것
  • 백정우
  • 승인 2020.02.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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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 되면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스스로 복제하는 나노 로봇이 만들어져 인간의 장기가 영원히 작동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간이 기계의 도움을 받아 불멸하게 되는 시점, 즉 2045년까지 살기 위해 1945년생인 커즈와일은 매일 하루에 250알의 약과 영양제를 복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줄였지만 아직도 매일 100알 정도는 먹는다. 바쁜 일정에서 스스로 약을 챙겨먹을 수 없어 약을 챙겨주는 비서를 따로 고용했을 정도다. 온라인 지불시스템 기업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은 영원히 사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고백한다.

불멸의 시작이 현실화될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시점으로 2100년을 잡는다. 몇몇은 2050년에는 건강하고 은행잔고가 충분한 모든 사람은 불멸을 시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전공학, 재생의학, 나노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점점 더 낙관적인 예언이 등장할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불멸이란 단어가 진시황의 헛된 꿈만은 아니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그런 시대가 온다면 거리에서 당신의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는 이미 불멸의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그곳이 뉴욕의 월스트리트나 5번가라면 그럴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진보는 인간 수명을 높여주었다. 고령화는 범세계적 현상이다. 화두는 ‘어떻게 노년의 삶을 살 것인가’이다. 건강하고 안락한 장수라면 걱정할 게 없다. 문제는 아프고 가난한 노년의 삶이다. 적당한 국가의료혜택과 적절한 공공복지 덕택에 삶은 지속되지만 질병과 빈곤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하층민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상만 해도 무섭다. 쉽게 죽지도 못한 채 국민평균수명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소외된 삶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빌 콘돈 감독의 영화 ‘굿 라이어’는 60년 전 자신을 강간하고 가족을 죽음과 파멸로 이끈 한 남자에 대한 복수와 응징을 그린 스릴러이다. 인물의 연령도 70대 중반이고 연기자 이안 맥켈런과 헬렌 미렌의 실제 나이도 칠순을 넘겼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화 캐릭터의 연령이 높아진 건 인간수명 연장과 무관하지 않다. ‘굿 라이어’가 제시하는 흥미로운 복수 방식 또한 맥을 같이한다.

가해자는 속죄는커녕 국가 의료보험에 기대어 말년을 보낼 순 없다며 끝까지 사악함을 드러낸다. 남은 평생도 와인을 마시고 살기 위해 또 다른 한탕을 꿈꾸는 것. 운명의 여신은 그를 베티에게 연결시켜주었고, 60년 동안 운명을 다 바쳐 그를 찾은 베티는 그의 마지막 타깃이 되며 복수를 실행한다. 여기서 베티가 선택한 방법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다. 그러니까 감옥에 보내는 등의 법을 통한 심판이 아닌 칠순 노인을 빈털터리로 전락시킨다. 금융자본주의의 꼭대기에서 범죄행각을 일삼으며 평생 호의호식한 인간에게 이보다 더 무서운 복수가 또 있을까. 병든 채로 고통스런 말년을 보내야하는 고령화시대의 단면이다.

휠체어에 앉아 서서히 고통 받으며 죽어갈 가해자와 대조되는 건 여인의 행복한 미소일 뿐 사필귀정의 또 다른 증거는 없다. 비로소 베티는 화창한 햇살을 선사받지만, 그래도 60년은 너무 오래 걸렸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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