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를 품다
두 남자를 품다
  • 승인 2020.02.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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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거실 한 켠, 옹그린 채 홀로 잠들어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아침을 차려달라는 소리도 없이 아들은 조심스레 거실 문을 연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발을 떼어놓는 소리가 들리더니 숨죽인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달칵, 단음절로 대문 여닫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아들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길을 따라 봄비가 부슬부슬 뒤따라 걷는다.

평소엔 아들이 맞추어 놓은 모닝콜 소리만 울려도 덩달아 깨어났다. 가끔, 여자 친구라도 만나는 날이면 내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장롱을 훤하게 열어젖혀 놓고는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신고 나갈 신발들을 들어 보이며 옷에 마침하게 찾아 주고 나면 그제야 환하게 웃어 보이며 집을 나선다. 그런 아들이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인기척이라도 새어 나올까 염려하듯 소리 없이 대문을 나선다.

남편과 살아온 세월의 반 이상을 주말부부로 살았다. 아빠 엄마가 함께 있는 것보다는 떨어져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보면서 아들은 자랐다.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남편, 한뎃잠을 자고 삼시 세끼 밥 한 그릇 제때 챙겨 먹지 못해도 집에 오면 늘 긍정의 아이콘으로 가족을 대했다.

나 역시 늘 빈자리로 남아있는 아빠의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애면글면 발을 동동 굴렸다. 아들은 안팎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모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듯 보였지만, 아빠의 부재로 인한 빈자리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듯 불안해 보일 때가 있었다.

빗줄기가 잦아들고 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창문을 열었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묵은 지난겨울을 청산하고 봄을 맞아들일 청소를 한다. 난장판으로 흐트러져있던 아들의 옷가지며 신발들을 가지런히 제자리로 챙겨 넣으며 잠시 우울해졌던 내 마음을 벗어 세탁기 속으로 던져 넣었다. 세탁기 속에서는 연신 나의 마음과 아들의 옷가지들이 어우러져 뱅글뱅글 곡조에 맞추어 왈츠를 추고 있다. 창가에 앉아 봄이 오는 길목을 내다보며 차 한 잔을 마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은 느닷없이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며 귀띔해준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아빠에게 전화한 아들이 대뜸

“아빠 왜 안 들어오세요? 식사는 제때 하셨나요?”

하더란다. 인기척조차 내뱉지 않고 문밖을 나서던 아들의 속내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일 년 내내 가봐야 용돈이 필요할 때면 단돈 일이만 원 정도를 계좌로 송금시켜 달라고 아빠에게 전화하던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철없는 아이에서 철이든 남자로서 인식하게 된 것일까. 거실 한 켠에 웅그린 채 홀로 잠들어 있는 엄마 모습을 보며 그제야 비어있는 아빠의 자리를 대신 채워줘야 한다는 어른스러운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몇 주째 들어오지 않는 아빠의 부재를 떠올리며 아빠가 계시지 않는다면 자신 스스로 가장이 되어 홀로 남겨진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에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단 한 번, 내색한 적은 없었지만 그러한 생각들로 아들은 자신의 자그마한 어깨 위에 가장의 삶을 끌어안아 얹었을는지도.

끊임없이 곁가지를 틔워 올리려고 발버둥 치는 인생의 파란만장한 길 위에 서서 기죽지 않고 올곧게 여기까지 살아냈다. 수월하지 않았고 순간순간이 삼베처럼 까슬까슬하기만 한 삶이었다. 참 겁 없이 보냈으며 나만 서럽다 여겼다.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득 채워 주지 못한 빈자리에 대한 연민은 늘 가슴에 남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부모의 도리를 제대로 못 해 준 것 같아 늘 미안했지만 아이는 제 무게와 크기에 알맞은 옷을 입고 벗으며 철이 잘든 것 같아 아주 고맙다.

등 시린 바닥 거실한 켠에 홀로 옹그린 채 잠든다 해도 이젠,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책임감을 다하는 성실한 남자와 그를 지켜보며 그 길을 따라 걸으려는 또 한 명의 든든한 남자가 있으니….

오늘 밤엔 듬직한 두 남자를 껴안는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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